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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상 첫 흑인 부통령이자 인도계 혈통을 가진 해리스는 미국 정치계에서 상징적인 인물이지만, 그간 바이든 대통령 뒤에 가려진 모양새였습니다. 물론, 행정부의 부수장으로서 중요한 정책 결정에 참여했지만, 외교 무대에서 존재감은 미미했습니다. 정치 경력 이전에도 검찰, 주 법무부 장관 등 사법 분야에서 활동한 만큼 외교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그녀는 대체로 전문 보좌관에 외교활동을 의존해 왔죠 (한국무역협회).
하지만 그녀는 대선 후보로서 직접적인 청사진을 제시해야만 합니다.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글로벌 리더십의 형태는 어떻게 될 것인지, 또 그 안에서 미국은 어떻게 자리를 잡을지 등등요. 세계 최강 대국이자, 양적 지원 기준 세계 최대 공여국인 미국의 대선은 단순히 미국에만 그 영향력이 국한되는 게 아닙니다. 특히 외교정책은 국가의 전략 축으로서 다양한 정책에도 영향을 끼치며, 국제 관계를 수행하는 주요 전략이기에 전 세계에서 앞다투어 조명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2024년 8월 22일 민주당 전당대회 마지막 날에서 후보자는 정석적인 답안을 제시했습니다. 이민에 대한 권리 수호, 對 우크라이나 지원 유지, 이스라엘 국가 인정-권리 보호 등 민주당 전통주의 기조를 그대로 가져갈 것임을 천명함과 동시에 가자 지구의 고통을 특히 강조하며 민주당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곧 “존엄, 안전, 자유, 자결권(Dignity, security, freedom, self-determination)”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Devex). 요약하자면, 바이든 행정부가 추구했던 기존 국제기구 중심 다자주의를 계승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모든 정책이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현재까지 후보자 측 개인 차원의 외교 문서나 구체적인 백서도 발표되지 않았지만, 그간의 행보와 지난달 발간된 민주당의 2024 대선 대비 주요 정책 공약서 “2024 platform”을 중심으로 카밀라 해리스 정부의 외교 정책 방향성을 살펴보겠습니다.
아프리카 협력 강화
트럼프 행정부의 아프리카 정책이 무역, 투자, 일대일로로 대표되는 중국의 확장 견제 등 경제면에 초점이 있었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더욱 포괄적인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지난해 12월 미국-아프리카 정상회의(The U.S.-Africa Leaders Summit) 개최 이래, 올 3월 해리스는 또다시 일주일간 아프리카 순방을 다녀왔습니다. 이 자리에서 국제 사회 내 아프리카의 역할을 강조하는 한편 이후 두 번째 미국-아프리카 정상회의를 조직하여 대표단을 워싱턴으로 초대하였습니다. 해리스의 아프리카 순방에 앞서 백악관 고위 관리들은 아프리카와의 관계는 중국과의 경쟁으로 규정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DW). 가나 아크라 광장에서 그녀가 행한 연설도 “미국은 아프리카의 파트너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느냐에 따라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며 비슷한 기조였습니다(AP, 연합뉴스에서 재인용).
민주당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지난 3년 반 간 바이든-해리스 행정부는 아프리카 보건 프로그램에 거의 200억 달러를 투입했으며, 130억 상당의 긴급 구호 및 식량 안보 지원을 제공했습니다. 익명의 고위 관료는 해리스가 對아프리카 정책에 깊이 관여(really involved in)하고 있다고 Devex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여성의 생식권: 낙태 접근성 강화
2022년, 미국은 공식적으로 낙태에 대한 헌법적 권리를 잃었습니다. 이후 전국의 주에서 낙태 시술을 제한하는 정책을 시행하자, 해리스는 이 논쟁 있는 주제에 대해 행정부의 대표로서 기꺼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초에는 낙태 클리닉을 방문한 첫 번째 행정부 대표 인사가 되었죠.
여성의 생식권이 그녀의 대선 캠프서 주요 캠페인이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8월 초, 해리스 캠프의 유력 파트너인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는 주 전역의 낙태 접근성 강화에 대해 연설했습니다. 또한 해리스 그녀도 민주당 전당대회 개최 이후 개인 트위터에서 의회가 낙태 접근성을 회복하는 법안을 복원하면 대통령으로서 “자랑스럽게 서명하겠다 (Proudly sign it into law)”고 밝혔죠.
부통령으로서 여성 건강에 관한 관심은 미국 내부에 초점이 집중되었지만, 상원의원으로서는 생식권 문제를 국제 무대로 확대하는 여러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멕시코시티 정책(Mexico City Policy)이라고도 불리는, 낙태 서비스를 제공하는 외국 단체에 대한 미국의 지원 금지를 골자로 하는 법안 폐지도 그녀가 주도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의 입법 활동과 해외에서 재생산 권리를 옹호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헬름스 수정안(The Helms Amendment)은 지난 60년간 해외에서의 낙태 서비스 지원을 금지해 왔는데요. 이 개정안은 강간, 근친상간 또는 산모의 생명에 위험이 있는 경우는 예외로 인정하지만, 지난 수년간 이러한 예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혼란이 있었고, 명확한 가이드 없이 해외 수원기관 차원에서 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기에 멕시코시티 정책이 뒤집히면서, 수원기관의 이해 문제는 더 복잡해졌죠. 또한, 모든 나라가 그렇듯이, 국제기구-각국 정부 등 관료제 (및 주요 이해관계자)는 변화에 보수적으로 접근할 것입니다. 외교관 출신 국제보건 전문가 Beth Schalchter 역시 동일한 의견을 표현했습니다(Devex).
이민 정책
해리스는 부통령으로 첫 임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이민 문제로 골머리를 썩었습니다. 당 내 일부 진보주의자들에겐 난민 수용에 소극적이라며 비판을, 반대편 공화당 측으로부터도 트럼프 시절 관행을 무시한다며 비판을 받았죠. 그만큼 이민 문제에서만큼은 철저한 중도의 길을 걸었습니다. 허리케인, 코로나19, 기후 변화 등 중앙아메리카의 주요 이주 요인을 해결하기 위해 3억 1,000만 달러를 지원했으며, 반부패 및 이민자 밀입국 방지 TF를 발족하여 UN이 이 지역에 더 많은 인도주의 대응을 할 수 있게 적극적으로 옹호 활동을 하였죠(외교부 라틴아메리카 협력센터). 이민자들이 자국 내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출신국 경제발전을 돕는 정책은, 돌려 말하면, ‘더 이상 미국 내로는 안 된다‘는 확실한 의사 표명입니다.
오늘날 미국은 국경 관리에 대단히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급기야 지난 6월, 바이든은 이민자의 불법 국경 통과가 일시적으로 급증했을 때 망명을 차단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했습니다. 이민자 권리 단체의 극심한 비판을 받았지만, 불법 국경 입국은 결과적으로 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2024년 2월 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로 이민 문제를 꼽은 응답자가 28%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또, 응답자의 55%가 불법 이민 문제가 미국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고 답변했습니다.
반이민 정서가 당적을 불문하고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대선 승리와 지지 세력 결집을 위해서라도 해리스 역시 바이든 정부와 유사한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국제 무대에서의 리더십: 세계의 경찰 복귀
2024년 1월 22일자 백악관 보도자료에 따르면, 해리스는 테드로스 아드하눔 게브레예수스(Tedros Adhanom Ghebryeyesus)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사무총장과 전임자의 WHO 탈퇴 결정 번복에 대해 논했습니다. 이는 취임 이틀 차 만에 이루어진 것인데요. 뒤이은 65차 UN 여성지위위원회(United Nations Commission on the Status of Women)에서 미국이 UN 및 기타 다자기구와의 참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죠. 그 외에도 NATO에 적극 개입하는 등, 부통령 임기 내내 트럼프 이전 시기 미국의 외교정책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취했죠. 많은 전문가는 해리스 정권이 기존 바이든 정권과 유사한 다자기구 활용 기조를 계승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한국경제, 경향신문).
마치며...
출처: Reuters
오늘 아카이빙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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