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문화의 토양입니다. 기록은 시간이 흘러 과거 인간의 행적을 증명하는 까닭에, 기념과 기억의 매개체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사람들 사이의 상호소통과 의사결정, 사건의 기록화와 그렇게 보존된 기록에 대한 접근권 확대에 관한 사회의 전방위적 요구는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알 권리와 민주주의에서의 시민권 차원이기도 합니다. 또한 기록은 유산이기도 합니다. 기록유산이란 용어에는 특정 기록이 미래 세대에 전승되어야 할 유산이며, 이를 잘 보존하고 모두가 접근할 수 있도록 기술적, 제도적, 시설적 기반을 마련하고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가 담겨 있습니다. 1995년부터 유네스코가 시행해온 세계기록유산 사업이 잘 알려진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번 테마는 ‘세계기록유산’입니다. 최근 ‘4.3 기록물’, ‘일본군‘위안부’ 기록물’과 ‘산림녹화기록물’ 등이 세계기록유산 등재 절차를 밟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중에 2011년 일찍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5.18민주화운동기록물’이 이번 글에서 다룰 주제입니다. 세계기록유산 사업은 무엇인지, 5.18민주화운동기록물이 어떤 과정을 통해 등재되었고, 최종 등재된 기록물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사업(Memory of the World, MOW)이란?
출처: 5.18 기념재단 홈페이지
1995년 유네스코에 의해 시작된 이 사업은 세계에 퍼져있는 기록 유산이 ‘인류 모두’의 소유물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따라서 이를 (인류 전체의) 미래 세대에게 전수, 보존하고 보호할 주체 역시 인류 모두에게 있음을 천명합니다. 기록 유산이 인류의 문화를 매개하는 중요한 유산인데도, 훼손되거나 영원히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음을 인식한 유네스코는 기록 유산의 보존과 이용을 위해 기록 유산의 목록을 작성하고 효과적인 보존 수단을 모색하기 위해 위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세계기록유산이란 전 세계 민족의 집단 기록이자, 인류의 사상과 발견, 성과의 진화를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위 사업을 통해 유네스코는 다음과 같은 목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첫째, 세계적 가치가 있는 귀중한 기록유산을 적절한 기술을 통해 보존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둘째, 유산의 중요성에 대한 전 세계적 인식과 보존의 필요성을 증진합니다.
셋째, 기록유산 사업 진흥 및 신기술 응용을 통해 많은 대중이 기록유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합니다.
세계기록유산은 2023년 등재 기준 494건으로, 위 기록들은 전 세계 167개국 이상의 국가에 소재하고 있습니다. 기록의 성격과 생산 시기는 무척 다양한데, 한국에서 등재된 기록의 분포만 봐도 이 넓은 스펙트럼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고문헌 기록이 14건이며, 5.18민주화운동 기록물, 4.19혁명 기록물 등 현대사 기록도 4건으로 총 18건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은 ‘1980년 인권기록유산’이란 수식어가 달려 있는데, 유네스코는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처럼 인권탄압의 역사를 증거하는 기록을 ‘인권기록유산’으로 규정했습니다. 인권기록유산의 외국 등재 사례를 간략히 살펴보면, '남아프리카 공화국 만델라 대통령의 형사 재판 기록', '필리핀 민중 혁명 당시의 라디오 방송국 녹음 테이프', '아르헨티나의 칠레의 인권 문서' 등이 있습니다. 관련 목록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홈페이지와 5.18민주화운동 기록관 홈페이지에서 자세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등재 절차는 대략 이렇습니다.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서가 접수되면, 조건 심사를 통해, 신청서가 유네스코가 요구하는 사항에 따라 적절히 작성되었는지, 기록은 등재 조건에 맞는 기록인지를 검토한 후 심의회를 개최하고 승인 및 보완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최종 신청서를 바탕으로 현지 조사를 실시해 최종 등재를 결정하는 절차를 밟게 됩니다.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준으로는 다음과 같은 8가지의 기준을 들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홈페이지와 학술논문(이정연 2015)을 참고해 필자가 작성한 표)
5.18민주화운동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
5.18기념재단 20년사에 따르면, 5.18민주화운동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시작은 2000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제안에 의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전까지는 초기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집중하느라 기록이 잘 관리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한국기록관리교육원에서 주최한 원례발표회에서 당시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문화팀장이던 허권은 ‘세계기록유산의 소개: 메모리 오브 월드사업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은 6.25 전쟁과 5.18 민주화운동 등 한반도의 현대사 관련 기록물 역시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기록유산이 될 수 있다는 게 그 요지였습니다.
이후 2009년, 당시 한국유네스코연맹 순천협회장이던 이태호가 당시 한국위원회 본부장이던 허권과 전남대 5.18 연구소 연구원 등에게 5.18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와 필요를 재차 설득했습니다. 5.18 관련 기관들은 이 제안을 진중히 받아들였고 ‘민관협의체’를 꾸려 이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그 결과 민간 법인인 5.18 기념재단, 학술 단체인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광주광역시가 참여해 ‘5.18 민주화운동기록물 세계기록유산등재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를 창립했습니다. 여기엔 관련 기관뿐 아니라 유족회, 부상자회 등 5.18 당사자들도 함께 창립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출처: 이정연, 2015, 인권기록유산 가치와 지평의 확산-5.18민주화운동기록물을 중심으로, 기록학연구 45
등재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노력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각종 기관에 분산되어 있던 기록을 한 곳에 모아 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추진위와 함께 기록을 소장하고 있던 광주시 5.18기념문화센터, 5.18자료실, 5.18 기념재단, 전남대 5.18연구소는 ’실무협의회‘를 구성해 기록을 기념문화센터에 모으고 통합 목록을 작성했습니다. 추진위는 목록과 함께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했으나, 유네스코의 등재 기준에 맞는 기록물은 그중에 행정 기록물이나 성명서 등 극히 일부뿐이었고 나머지는 유네스코로부터 “이미 중앙정부로 이관 또는 보관”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려, 보완이 필요하다는 뜻이 전달되었습니다. 이는 유네스코가 등재 기준을 충족하면서 인권침해 ’사건'의 직접적인 기록만을 등재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추진위는 유네스코의 등재 기준을 충족하는 기록을 다시 발굴, 수집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국가 기관 및 군 사법기관, 당시 5.18 당사자, 사진기자, 병원, 미국 정부, 국회 등 신뢰할 만한 기관에서 생산, 보관 중인 기록과 김대중 내란음모 관련 기록이 추가, 보완되었습니다. 단, 여기에는 보안 상 소장 기관이 공개를 거부한 대검찰청 수사 기록 및 판결문과 계엄 상황일지, 육군 작전 상황일지 등이 포함된 군대의 5.18 관련 자료 등은 제외되었습니다.
그렇게 모인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 홈페이지를 참고해 필자가 작성한 표)
'5.18은 민주화운동'임을 공식적으로 승인
이 과정에서 더욱 큰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등재를 반대하는 여론이었습니다. 보수 단체와 언론은 반대 성명을 발표했고, 심지어 2010년 유네스코 파리 본부에 ’등재 반대 의견서‘가 접수되었습니다. 의견서를 제출한 ’국가 정체성 확립을 위한 한국민협의회‘라는 단체는 대체로 보수 인사를 중심으로 퍼져 있던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했습니다.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유네스코 본부는 한국위원회에 5.18에 관한 한국 내 의견을 통일해 달라는 요청 공문을 보내왔습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이와 같은 요청에 즉각 5.18은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되었으며, 당시 ’민주화운동피해보상법‘,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대법원 판결을 포함한 3개의 법률에 의해 보장 받고 있다는 취지의 답장을 보냈지만, 이를 기점으로 최종 심의 시기인 2011년 5월 말이 되기까지 북한군 개입설에 관한 근거 없는 주장이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계속되었습니다.
최종 등재 결정
5.18 관련 기관 및 단체는 즉각 이러한 망언을 규탄했고, 추진위는 김황식 국무총리가 5.18 기념행사를 맞아 광주시에 방문하기 전 그에게 전달할 서한을 준비했습니다. 그 내용은 항간에 떠도는 북한군 개입설 및 광주시민 폭도설에 관한 정부의 분명한 입장을 유네스코 본부에 전달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강운태 시장은 광주공항에서 김황식 국무총리를 맞아 국립5.18민주묘지까지 동행하는 승용차 안에서 이 서한을 전달했습니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5월 20일 정부 훈령을 통해 ’5.18은 법률적으로 정리되었으며 민주화운동이라는 것이 정부의 입장‘임을 주 유네스코 대사에게 알렸습니다. 이에 따라 공식 서한은 유네스코 사무총장에게 전달되었습니다. 2011년 5월 25일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결정을 최종 발표했습니다.
출처 및 참고 문헌
5.18기념재단 20년사
이정연, 2015, 인권기록유산 가치와 지평의 확산-5.18민주화운동기록물을 중심으로, 기록학연구 45
코멘트를 달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