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난장이가 쏘아올린 떡볶이 - 2015 활동가 네트워크파티 "15명의 활동가 사람책X미트쉐어"
작성자 :
NPO지원센터, 작성일 : 2015.09.14, 조회수 : 2041
사람책 <난쟁이가 쏘아올린 떡볶이>유의선 / 전국노점상연합회 정책위원장
○ 참가자
홍석균 : 에바다 장애인 자립센터
이창균 : 에바다 장애인 자립센터
김동환 : 활동보조
고아라 : 맘편히 장사하는 상인 모임
김희정 : NPO지원센터
윤진영 : 희망연대노조
이영아 : 참여연대
정준호 : 책갈피
◯ 참석자들이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면서 시작.
○ 자기소개
학생운동으로 시작. 특정한 조직에 소속되어 있지 않았던 이유로 학생운동 이후에 현장으로. 골프장 캐디도 했고, 청계천 시다를 거쳐 남동공단에 취업했으나 학생운동 건으로 구속. 출소해서는 실업자 지원센터에서 일했다. 실업센터에 있으면서 실업자 운동을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여성장애인 수급자 최옥란씨를 만나고, 그녀의 죽음을 겪으면서 앞으로 계속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빈곤사회연대라는 연대체를 결성해서 사무국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그때의 인연을 계기로 전노련으로 향했다. 이후 용산참사를 겪고 많은 아픔이 있었다. 정당활동 등을 했으나. 이후 그만두고 노점 시작. 계속된 단속으로 결국 포기. 녹즙배달도 했다. 이후 다시 전노련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다.
Q.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사건은?
최옥란열사의 투쟁과 죽음이었다.
Q. 난쟁이가 쏘아 올린 떡볶이로 지은 이유는?
난쏘공이 출간된 당시 작가가 그리던 모습이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빈곤의제는 여전하다. 오히려 이제는 모두가 가난한 시대가 되었다. 빈곤연대에서 연대하는 이들이 대부분 노점상, 철거민, 장애인들 이다. 우리는 모두 난쟁이다.
Q. 노점을 보는 시선?
노점이라고 인터넷에 치면 매우 부정적인 인식들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전노련은 86년 아시안게임 당시 노점에 대대적인 탄압으로 결성되었다. 당시 투쟁하시던 분들 중 장애인분들이 많았다.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가서 일했기 때문. 과거에는 이들을 안쓰러워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장사 잘 되는 곳에는 곱지 않은 시선을 준다. 지금은 모두가 가난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기존만큼의 연대나 주목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
구청도 행정비용이 들기 때문에 신규 진입자만 단속한다. 노점해서 돈 버는 사람은 거의 없음에도 아주 소수의 노점상에 대한 공격이 대부분 어려운 노점상에게 향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나 스스로도 노점하며 가장 힘들었던것은 추위와 어마어마한 노동과 더위와 소음과 단속과 외로움이다. 노점은 가난해야 하다는 사회적인 시선과 자기 검열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본인들은 어떤 시선으로 노점상을 보는가? 노점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어먹지는 않나? 노점도 사람의 일이다. 사람을 봐달라.
Q. 처음과 현재의 노점/단체는 어떻게 달라졌는가?
지금은 다른 분야들과 마찬가지로 대형 프랜차이즈가 길거리 음식을 장악. 경기침체가 심화되어가면서 길거리 물가를 체감. 메르스 등 외부적인 요인도 있음. 지자체의 비용 지출이 부담되면서 노점을 제도화 시키려는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음. 지자체 단위에서 허가 및 관리 규정을 제정하고 있는 추세. 노점도 안정적인 장사를 하는 것을 원한다. 하지만 노점을 없애겠다는 방식, 공존하지 않는 방식으로의 허가제가 추진 중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며, 찬성할 수 없다.
Q. 오랫동안 운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뭔가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현장에서 싸워서 풀어야할 문제이지, 그저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아서는 안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가난한 이들은 옆에 있어주는것이 중요하다. 빈민운동은 그 사람들 옆에 있어줄 필요가 있다. 이 사람들의 선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살아감에 있어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많이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것이 내가 잘 하는 일이다.
Q. 여성활동가로서?
여성이 아닌 일꾼으로 보이고 약해보이지 않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명예남성으로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경계해야 했다. 대부분 단체 내에서 활동하면서 여성 남성이 아닌 정책위원장으로 분리되어 생각되는 경향이 있음. ‘정책위원장이 무슨 여성이야’ 등의 말은 나의 성정체성과 직책을 분리하면서 여성으로서의 인정을 하지 않으려는 것. 나또한 그것을 원한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하게 됨. 희망연대노조의 윤진영 위원장도 같은 고민을 토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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