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NPO 지원센터

#11. 아는 사람은 아는. 정경섭. - 2015 활동가 네트워크파티 "15명의 활동가 사람책X미트쉐어"
작성자 : NPO지원센터, 작성일 : 2015.09.14, 조회수 : 1811

정경섭은 도전하는 것을 즐긴다.
민중의집이란 낯설고 생소한 단체를 만들 때도 그랬다. 유럽의 사례를 연구하고 이를 접목시키기 위해서 2년 동안 지역을 돌아다녔다. 돈을 모으고 사람을 모아서 민중의집을 만들었다.
민중의집이란 책을 쓸 때는 더욱더 신기했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45일 동안 유럽 민중의집을 탐방했다고 한다. 은행에서 대출을 할 정도면, 전 재산을 걸고 유럽을 간 거였다. 2년 동안 책을 쓰고 출판을 했다. 그 책을 통해서 국내에 민중의집이 보다 정확하게 알려졌다.
마포의료생협은 무려 3년 넘게 준비를 했다고 한다. 그것도 놀라웠지만, 동물병원 협동조합을 만든 것은 더 신기했다. 2년 6개월 동안 주민들과 함께 준비를 하고 올해 6월 동물병원을 오픈했다. 
마포의료생협은 3년이 넘는 기간, 동물병원 협동조합은 2년 6개월 동안. 
무엇을 하나 이루기 위해서, 없던 것을 창조하기 위해서 몇 년의 세월을 치열하게 살아간다. 
최근에는 공동체이익회사 굿바이를 창업했다고 한다. 능동적 소비자를 만들고 이윤을 지역에 환원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이 목표란다. 
사회적기업과 닮았지만 다른 것이 공동체이익회사 인거 같다. 영국의 공동체이익회사를 모델로 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의 실험이 잘되길 기원해 본다.  


공동체경제에 대해서.

여기저기에서 이대로는 못살겠다고 얘기합니다. 이민도 불사하겠다고 합니다. 하루 평균 40여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합니다. 탈출구를 찾고 싶지만 누구하나 속 시원하게 얘기해주지 못합니다. 
저는 사회운동세력은 이제 사람들의 물음에 답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대로는 못살겠다고 하는 내 주변의 이웃들에게 “이렇게 한번 해보자”라고 얘기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이대로가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들에게는 대안을 찾을 시간이 좀 더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에 동의합니다. 공동체경제 <모아>는 좀 급박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대안이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한 인식 속에서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공동체경제 모아는 실제 대안이 될 수 없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유의미한 실험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물론 우리는 이것을 실제 대안으로 만들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과 기획을 하게 될 것입니다. 실패를 전제로 단체를 만들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으니까요.

알람이 울리는군요. 하루가 시작입니다. 
지금 제 단잠을 깨우는 알람은 핸드폰 알람입니다. 이 핸드폰은 얼마전에 새로 바꾼 것입니다. 공동체이익회사 굿바이를 통해서 핸드폰 공동구매를 했었죠. 저는 00통신사에서 00 통신사로 이동을 했고, 요금제는 5만9천원을 선택했습니다. 수수료가 20만원인 것을 미리 확인했습니다. 20만원 중에서 75%인 15만원은 제가 지정한 단체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요즘 상근활동가 월급지급도 위태위태하다는 민중의집에 기부했습니다. 나머지 25%는 공동체이익회사의 생존기금으로 쓰입니다. 제가 핸드폰을 얼마큼 바꾸며 살았을까요. 정확하진 않지만 삐삐에서 핸드폰으로 옮긴 지금까지 10차례 이상은 될 거라고 봅니다. 이때까지 저는 한번도 핸드폰의 수익을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대리점에 주면 그만이었죠.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저는 핸드폰을 살 때, 얼만 큼의 이윤이 생기고 그 이윤을 어디에 쓸지를 스스로 정합니다. 이런 걸 공동체경제 모아에서는 능동적 소비라고 하고 저는 능동적 소비자라고 합니다. 
빨리 잠을 깨고 출근하기 위해서 샤워를 하러 갑니다. 간밤에 마셨던 소주가 아직도 머릿속을 타고 흐르네요. 샤워기를 켜고 눈을 감은채로 오늘 하루 일과를 생각하고 머리를 감습니다. 샴푸는 얼마 전까지 LG화학에서 만든 탈모방지 샴푸를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한땀 두레에서 만든 샴푸를 씁니다. 요즘 협동조합 협의회가 공동판로를 모색하면서 함땀 두레, 각향각색 협동조합의 샴푸, 비누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대기업 제품과 비교할 수 없다고 해서 한번 사봤는데 정말 기가막히더군요. 덕분에 오늘도 머리가 시원해집니다. 탈모방지에도 훨씬 좋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샤워를 하고 나와서 가볍게 아침식사를 합니다. 물론 두레생협에서 사온 빵과 우유. 사실 생협 물건을 자주 쓰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래도 가격이 좀 비싸다보니 부담이 됐죠. 그런데 얼마 전에 울림두레생협에서 우리동생에 500만원을 출자해 줬습니다.  동조합간 연대라는 것을 실감했었죠. 또한 울림두레에서는 어르신 돌봄사업을 위해서 공동체 이익회사 굿바이의 핸드폰 사업을 함께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도 울리두레생협 매장을 자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울림두레에서 소비하면 그 비용이 다시 우리동생 같은 신생 협동조합의 지원사업비로 쓰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자동차 매니아인 저는 승용차로 출근을 합니다. 하루에도 여러 명을 실어 나르고, 짐도 많이 옮겨야 하기 때문에 저에게는 승용차가 필수입니다. 97년 아반떼. 이제 골골거려서 곧 바꿔야 합니다. 공동체경제 모아에서 곧 승용차 공동구매 사업을 실시한다고 합니다. 현대-기아자, 쉐보레 등과 협약을 맺어서 공동체경제 회원의 경우 수익금의 일부를 지역기금으로 반환해 준다고 합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차, 기아차 지부에서도 큰 힘을 써줬죠. 물론 인천 부평에 있는 GM 노조에서도 많은 도움을 줬어요. 승용차를 공동구매 한 수익금은 지역 환경운동에 쓰자는 의견이 많던데 어찌될지는 두고 봐야겠습니다.

아이를 어린이 집에 맡기고, 커피를 마시고, 병원에 가고, 동네 극장에 가고, 공동체경제회원의 집에서 술을 한잔했습니다.
어린이집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이고, 커피는 우리가 만든 카페입니다. 커피를 포함한 모든 원료는 공동체이익회사 2호인 <The 마포>에서 유통한 것입니다. 아, 공동체이익회사는 수익의 절반 이상을 무조건 지역에 기부해야 한다는 원칙을 정해놓고 있습니다. 이 원칙에 동의하는 모든 기업에게 우리는 공동체이익회사란 칭호를 수여합니다. 위기를 극복한 <괜찮아요 협동조합>도 곧 공동체이익회사로 전환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성미산마을 극장에서 영화를 본 뒤, 거나한 술자리가 펼쳐졌습니다. 술값을 보니 얼추 20만원은 나오게 생겼네요. 이중에서 5%는 지역기금으로 적립됩니다. 오렌지 색깔, 솥뚜껑 크기의 동글란 원안에 ‘공동체경제네트워크 모아 회원의집’이라고 쓰여 있는 모든 곳은 지역기금을 적립합니다. 카운터에는 현재 마포지역에서 적립된 지역기금이 총 3천여만원이라고 써 있습니다. 오늘 술자리의 주제가 바로 이 지역기금을 어떻게 쓰느냐입니다. 
필요생산 위원회의 보고서에 마을공유버스, 만두공방, 뮤직협동조합 등이 대해서 세부적인 예산이 조사되어 있었습니다. 이 중에 어떤 것을 먼저할까 모두들 의견이 분분하네요. 어린이들을 위한 기획이 필요하다, 청소년을 위한 기획이 필요하다, 마을 공유 일터가 필요하다는 등등의 의견이 쏟아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마을공유 일터에 한 표를 던졌습니다. 일종의 마을 작업장이죠. 누구나 예약만 하면, 그곳에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반찬을 만들어서 팔 수도 있고, 성미산학교 학생들처럼 화덕을 만들어서 팔수도 있고, 만두를 만들 수도 있고, 국수를 뽑아서 동네에 팔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그곳에서 자기가 스스로 먹고살 수 있는 자립 기술을 배우고 사용하고 그것을 통해 생계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작업장. 높은 보증금 임대료 때문에 공간을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이 이곳에 비치된 장비를 무료로 이용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팔 수 있다면. 얼마전 폐지를 줍는 할머니나 아직 일할 수 있는데 일거리가 없는 저의 어머니도 이곳에서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분들이 반찬을 만들어서 동네 사무실에 공급을 할 수도 있죠. 배달은 얼마전 민중의집에서 첫 번째 모임을 가진 배달협동조합에서 담당하면 됩니다. 어쨌든 우리는 지역기금을 가지고 무언가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 공간에서 누군가와 누군가가 만나서 서로를 의지하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울림두레의 조합원이 될 것이고 아프면 마포의료생협 의원을 이용할 것입니다. 우리들의 노후를 위해서 울림두레와 의료생협 의원은 요양센터를 설립할 것인데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일 것입니다.

비틀비틀 기분 좋게 취해서 집에 들어왔습니다. 
오늘도 난 대기업의 판에 박힌 제품이 아닌 이웃들이 만든 제품을 사용했습니다. 난 돈을 썼고, 그 돈으로 누군가가 생존할 수 있게 됐습니다. 내 소비에 대해 난 자랑스럽고 그런 나를 이웃인 판매자는 존중해 줍니다. 예전에는 대형마트에서 소비를 했고, 그런 소비는 증발됐는데 이제는 내 소비가 내 행복으로 돌아오게 만듭니다. 지역기금이 쌓이고 우리가 필요한 것을 상상하고 현실화 시키는 자금줄이 됐습니다. 저의 소비를 통해서 판매자와 관계가 형성되는 생성의 경제가 마포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내일은 여름 휴가 때 쓸 선글라스를 하나 장만하려고 합니다. 망원시장 옆에 있는 <안경만들기>는 공동체경제 1호 회원의 집입니다. 그동안 몇 개의 점포가 공동체경제 회원의 집에서 탈락되는 가슴 아픈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점포에 대한 신뢰도를 지속적으로 조사하기 때문에 단순히 장사를 위해 가입한 점포는 몇 개월 내에 그 신뢰도가 땅에 떨어지게 되는거죠. 하지만 <안경만들기>는 가격을 포함한 신뢰도에 있어서 모두에게 만족을 주었습니다. 
선글라스를 장만하고 나면, <스포츠협동조합>에서 보다 강도 높은 운동을 할 예정입니다. 월4만원이면 태극권, 택견, 크로스핏, 복싱 등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이곳이 생겨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번 여름엔 빛나는 몸을 만들어 멋진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려고 합니다. 하루빨리 여행사도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휴가 때 돈을 펑펑 써도 걱정 없습니다. 요즘은 모두가 ‘투잡’입니다. 

지역기금으로 만두공방이 생기면 휴일에 만두를 빚을 것이요, 공동작업장이 생기면 주문형으로 해독주스를 만들어서 판매할 생각입니다. 그도 아니면, 굿바이에서 진행하는 반려동물쇼핑몰 배송작업을 하면 됩니다. 요즘 반려동물 쇼핑몰이 대박이라고 합니다. 박스포장할 사람들이 필요해서 아이들까지 신이나서 알바를 한다고 합니다. 하루 나가면 5만원 벌 수 있으니 사람들과 즐겁게 일하고 밥도 먹고 포장작업 하렵니다. 여기는 일할 수 있는 게 많습니다. 대기업 제품을 쓰지 않으니 만들어야 할 것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일자리도 창출됩니다. 물론 제품이 좋은 건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공동체경제를 자립과 연대의 경제라고 했을 때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게 바로 자립인 거 같습니다. 그동안 소비만 했고, 그 소비행위 조차 제가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이윤이 어디로 흘러가고 그것이 어떻게 쓰여지는지 영영 제가 관여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대기업이 만들어주는 데로, 대기업이 광고해주는 데로, 최면에 걸린 듯 그들의 뜻대로 호주머니를 열고 소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것이죠.

경제행위를 함께 하다보니 비슷한 정치의식을 가지게 됐습니다. 아니 정치가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절감하게 됐죠. 그래서 캐서린 깁슨이 공동체 경제는 윤리적 정치적 공간이라고 얘기한 거 같습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윤리적 태도와 정치적 선택이 결정됐으니까요. 
그래요. 정치를 건드리지 않고는 더 큰 자립은 불가능하죠. 도로를 놓고 환경정책을 결정하는 건 모두 정치의 영역입니다. 곧 있을 지방선거에서 마포공동체경제 네트워크 모아의 회원들이 대거출마해서 당선되길 기원해 봅니다. 한차원 더 높은 수준으로 마포지역에서 공동체경제가 펼쳐지려면 지역권력에 더 가까이 가야 가능한 일이란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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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NPO지원센터, 작성일 : 2015.09.14, 조회수 :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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