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NPO 지원센터

#15. 핵풍선을 터뜨리는 송곳이 되기 위해 - 2015 활동가 네트워크파티 "15명의 활동가 사람책X미트쉐어"
작성자 : NPO지원센터, 작성일 : 2015.09.14, 조회수 : 1674



참석자 : 이강택 외 3(신장식, 문미정, 성명불상 1명)
기  록 : 신장식

1. 김혜정 사람책이 맡고 있는 직책 소개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
   방사능시민감시센터 운영위원장
   환경운동연합 원전안전 특별위원장


2. 지역에서 반핵운동을!

   오지라 할 수 있는 울진에서 셋째 딸로 태어남.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잉여인간으로 조용히 성장했음. 부모님의 말을 거스르지 않았으나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가고 싶다는 욕심은 버릴 수 없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하면서 진학을 준비하여 마침내 24세 때인 86년도에 대학 입학. 그러나 대학은 기대했던 것과 달랐음. 운동하는 학생들은 관념적이었고 생활태도는 나이브했으며 등록금은 지나치게 바쌌음. 마침 아버님의 병수발도 필요했고 본인으로서도 대학 생활에 흥미를 잃었기 때문에 휴학하고 울진으로 돌아감. 개척지가 아니라 황무지, 내가 가고 싶은 곳보다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 부모님이 가지 말라고 하는 곳으로 가자라는 세 가지 기질과 88년 울진원전 가동을 앞둔 고향 사람들은 피해자 중의 피해자라는 생각이 맞아떨어지면서 지역에서 반핵운동을 하자라고 결심. 그 무렵 울진도서관에서 평교협 교사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들을 주축으로 88년에 ‘울진반핵운동청년협의회’ 결성. 익명성이 없는 작은 동네에서 반핵운동을 한다는 것은 무관심과 무시의 연속. 89년 다시 상경.

3. 반핵운동, 성공과 좌절

  89년 공해추방연합 간사일을 시작. 관심을 가져주는 시민들의 반응에 미친년처럼 회원을 모집하고 운동을 펼쳤음. 그 때만 해도 공추련은 운동진영이 개량으로 취급. 주민들에게는 빨갱이, 운동권에게는 개량. 전국적으로 반핵운동을 펼쳤고 모두 이겼음. 울진, 삼척, 부안, 굴업도 투쟁은 수많은 활동가와 투사들을 만들었고 심지어 지역들 사이에 반핵운동 경쟁을 벌이는 듯한 모습도 보였음. 굴업도에 몰래 들어갔다가 쫓겨나다시피 했지만 주민들의 요청으로 다시 섬으로 돌아가서 결국 방폐장 반대 싸움에서 승리했던 기억. 주민들의 가슴에 맺힌 이야기를 잘 표출할 수 있도록 돕는 것.

   2005년 경주 방폐장 투쟁은 철저한 패배. 노무현 대통령은 고질적인 사회적 갈등요인을 자신이 스스로 해결하고 싶어했음. 이해찬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방폐장 유치지역 지원사업. 영남과 호남 사이에 방폐장 유치경쟁이 벌어지고 주민투표 찬성률이 가장 높은 경주가 방폐장이 되면서 어제의 동료였던 주민들이 나와 같은 탈핵운동가들을 외면. 주민들이 온갖 희생이 따르는 탈핵운동보다는 차라리 지역지원금을 받는 쪽으로 기울어가면서 동시에 탈핵운동도 힘을 잃기 시작. 탈핵운동은 ‘원자력안전신화’에 빠져 있었던 시민대중의 지지도 얻지 못한 상태. 

4. 후쿠시마, 다시 탈핵운동의 전선으로

   2007년 환경운동연합 최초의 직선, 여성 사무총장으로 선출됨. 환경운동은 큰 조직이었고 당시 내, 외부적으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면서 사무총장으로서 해야 할 일은 말로 다하지 못할만큼 많았음. 총장임기를 마치고 안식년. 캐나다에서 연수. 짧은 노동시간과 가족들, 친구들과의 여가 등의 캐나다 사람들의 평화로운 삶을 보고 나도 그런 운동, 그런 삶을 살겠다고 결심. 귀국 후에도 환경운동연합의 직책을 맡지 않음. 탈핵운동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는 생각. 

   2013년 3월 12일 후쿠시마 원전사고 발생. 13일 하루 종일 TV 앞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잠도 오지 않는 악몽에 시달리다 14일 아침이 되자마자 짐을 꾸림. 당분간 집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마음으로 환경운동연합으로 달려감. 그날로 복귀하여 ‘일본원전사고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활동을 시작.

   한국 탈핵운동의 역사는 ‘후쿠시마 사고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고 단언할 만큼 사회 전체의 흐름이 바뀜. 환경단체는 물론 생활협동조합, YWCA, 엄마들 모임, 청소년 모임, 종교계, 국회의원 모임, 지방자치단체장 모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탈핵운동 참여. 엄마들 모임과 여성단체, 생협들은 탈핵교육과 실천활동에 적극적. 엄마들 모임을 많이 만들고 참여하고 교육하면서 본인도 많이 변화. 여성들의 가능성과 실천적 힘, 정보의 전파력에 놀람. 핵에 대해 알고 싶고 실천하고 싶어하는 여성들 모임이 있다면 어디든 간다. 원자력안전위원회라는 규제기관이 생기고 여기에 위원으로 본인이 참여하게 된 것도 발전. 

   탈핵운동에서도 승리의 경험은 매우 중요. 원전 수는 늘었지만 고리 1호기를 폐쇄한 것은 엄청난 성과이자 승리의 기억. 그 승리의 경험이 그 다음 운동의 가장 강력한 기반. 바닥을 치고 다시 탈핵운동에 들어서서 그런지, 모든 것이 희망적. 그토록 갈망했던 ‘탈핵운동의 대중화’의 물결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

5. 활동가, 황무지로, 가지 말라는 곳으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걸어가는 사람들

   세상에 대해 한 번도 질문해 보지 않고, 세상을 위해 한 번도 희생해보지 않고, 세상의 변화를 위해 맞서 보지 않은 사람들이 전문가, 관리라는 이름으로 소위 좋은 자리에 있는 것, 불쌍하고 안타깝다. 활동가들이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운동하는 사람이 가장 매력적. 운동하는 삶이 가장 아름답다. 자존감을 가지고 황무지로, 가지 말라는 곳으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당당히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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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NPO지원센터, 작성일 : 2015.09.14, 조회수 : 1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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