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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ror: 뭔가 말해야 합니다 –비평담론의 전환 도모
작성자 : Yuhyeong Smila Park, 작성일 : 2015.04.30, 조회수 : 3204


Error: 뭔가 말해야 합니다 –비평담론의 전환 도모


일시/ 2015. 3. 22

진행 / 백지원

패널 / 이용재(음식평론가), 임근준(미술평론가), 김용언(<미스테리아> 편집장), 소영현(문학평론가)


백지원: 안녕하세요. ‘Error: 뭔가 말해야 합니다’ 사회를 맡은 백지원입니다. 의미값이 0에 수렴하는 말들의 공회전에서 비평을 구출하고 새로운 담론을 이끌어내자는 자못 거창한 의도에서 자리를 열게 되었습니다. 참석해주신 패널 분들과 관객 분들게 감사드리며 먼저 간략한 패널 소개와 근황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용재: 안녕하세요. 음식평론가 이용재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일단 제 홈페이지에 음식 관련 글을 쓰고 있고요. 몇몇 매체에 관련 글을 또 쓰고 있고 근황을 간략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2년 전에 “외식의 품격”이란 단행본을 냈는데요. 그 다음 속편을 올 후반기 출간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고요. 그 외에 옮기는 책 세 권정도 기획하고 있고요. 또 봄에는 모 대학 박사과정에서 전공과목을 하나 맡아서 가르치고 있고요. 주목할 만한 거라면 아마 최초로 제가 이 일을 하고 5년 정도 만에 본격적인 레스토랑 리뷰를 잡지에 이번호부터, 4월호부터 기고할 예정인 게 있겠고요.

임근준: 저는 미술비평가인데요. 저는 미술‧디자인 비평가로 활동한 지 길게 보면 20년 정도 되는데요. 처음부터 지금까지 관심사로 갖고 있는 건 어쨌든 한국사회에서 당대성이라고 하는 게 어떻게 형성되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는가. 이게 저한테는 가장 큰 대 주제, 연구 과제라고 볼 수가 있어요. 2008년을 기점으로 해서 시각성의 체제가 크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제가 평론가로서 목표로 삼고 있는 건 변화하는 체제를 어떻게 적절한 형식으로 담론화해서 새로운 국면을 뽑아서 비평적 상황을 도출하느냐 이게 저한텐 가장 큰 과제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현재 하고 있는 일들은 기본적으로 비평가니까 평론을 쓰는 게 기본적인 활동이겠지만 가장 가까운 미래에 기획하고 있는 일이라고 하면 기본적으로는 이제 현재 새로이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의식이 끝나고 난 뒤의 상황, 좀비 모더니즘의 상황에 부응하는 비평서를 하나 준비하고 있는데 오랫동안 지금 못 내고 있는데요. 올 상반기엔 어쨌든 출간이 될 예정이고요. 거기에 맞춰서 이제 지난 시대, 00년대 예술가들 답문 시리즈를 두산에서 진행했던 이야기들을 정리해서 자료집으로 출간할 거예요. 두 가지 출간 계획이 가장 가까운 기획입니다. 그 외에 장기적인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이따가 비평 관련해서 자세하게 하부문제를 얘기해볼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용언: 안녕하세요. 저는 김용언이라고 하고요. 저는 사실 비평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온 게 좀 민망한데, 2000년부터 주로 영화지에서 기자로 일을 했었고요. 중간에 사이에 장르문학을 다루는 첫 월간지였던 <판타스틱>에서 일을 했었고 <판타스틱> 망한 다음에 그 다음에 이제 새롭게 했었던 게 <프레시안>에서 주말마다 나왔던 서평섹션 <프레시안북스>의 팀장 일을 했었고요. 지금은 이제 한 달에서 한 달 반쯤 뒤에 1호가 나오게 될 미스터리 소설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잡지를 지금 준비를 하고 있어요. 문학동네에서 장르소설 임프린트로 잘 알고 계시는 엘릭시르라는 출판사에서 내게 될 거고요. 이름은 <미스테리아>라고 합니다. 미스터리 소설을 전문으로 한국 작가들 작품과 그 외 작품들을 절반 정도로 채우고 나머지는 기사들로 채우게 될 그런 잡지, 격월간으로 나오게 될 잡지로 일종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소영현: 안녕하세요. 저는 문학평론하고 있는 소영현입니다. 제가 사실 대중 울렁증 같은 게 있어요. 글로는 제가 하고 싶은 얘기 다 하는데 말로는 잘 못하고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 너무 당황스러워서 (웃음) 좀 멀리 차라리 강연은 괜찮은데 너무 이렇게 보시면 제가 말을 제대로 못해가지고 여러분이 흥미 있어 할 만 한 얘기를 할 수 있을까. 두서없이 이야기하게 될 건데. 미리 잘 부탁드리고요. 이것저것 하고 있고요. 앞으로도 이것저것 할 계획이고 전공도 애초에는 원래는 여러분 되게 재미없어하실 1900년대 주변의 어떤 청년 주체 이런 거에 대해서 연구를 했었는데요. 그 이후론 도대체 뭐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이 된, 이것저것 뭐 문학, 영화, 만화, 웹툰까지는 아직 못했고요. 뭐 팬픽, 아무튼 이런 거 다 하고 있고요. 가장 최근에는 역사화하는 작업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서 비평에 대한 논의 혹은 비평이 뭐냐, 비평이 한국에서 어떻게 자리잡아왔느냐 연구하는 것과 문학, 문화 사이의 경계에 놓여있는 비평의 영역에 대한 문제제기도 계속 하고 있어요. 한편으로 계속 또 꾸준히 하는 작업 중에는 역사화작업 가운데 여러분이 잘 아시는 <창작과비평>이라는 잡지가 있는데 1966년에 한국에서 만들어졌고요. 그게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 2월에 발표를 했었는데 한국에서 그런 비평적인 매체가 만들어지는 분야에 대해서 연구하는 작업을 계속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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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원: 감사합니다. 저희가 여기서 논의해보려고 한 주제는 크게 세 가지인데요. 첫째는 비평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말씀 여쭤보고 싶었고 두 번째로는 비평이라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매체와 제도에 대해서 좀 말씀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근/현대적 개인’으로서 비평 작업을 하는 거에 대한 질문들을 패널 선생님들께 각각 드리고 싶었어요. 시간이 남으면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저희가 90분 동안 일단 패널 토론을 진행을 하고 남은 30분 동안은 플로어 질문으로 진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비평을 비평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입니다. 우리가 흔히 비평가라는 말을 쓰지만 지면에 나오는 직함은 대개 평론가인데, 저는 ‘평론’이라는 말이 강조하고 있는 것이 비평의 ‘글’로서의 성격이라고 생각했어요. 따라서 평론가란 비평 작업을 글로써 수행하는 사람이 아닌가 궁금했습니다.

이용재: 00그라운드에서 섭외 연락을 받고 이것이 굉장히 저의 작업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왜냐면 문학을 평론하시는 분도 있고, 미술이나 디자인을 평론하시는 분도 있고 이러한 측면에서 이미 평론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 돼있거든요. 평론을 한다, 평론하시는 분들 있다, 라는 거에 대해서는 사실 이견이 없습니다. 근데 음식에 대해서는 여태껏 과연 음식이 평론의 대상인가 하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음식 전반 문화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갖고 있는 어떤 태도라고 생각하거든요. 일단 저의 작업의 목표는 음식 평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리고 제가 선택한 것이 표준적인 방법론이다 답변은 못하지만 접근 방식으로서 이러한 것이 존재한다, 라는 것을 글을 써서 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음식 비평의 목적은 무엇인가라고 자문을 한다면 저는 어떤 담론 자체의 존재와 가능성을 부각시키는 거, 한 마디로 음식을 대상으로 놓고 우리가 생각을 할 수 있는가, 우리가 이야기를 할 수가 있는가, 그런 것이 1차적인 과제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글쓰기에 대한 문제는 사실 저는 원래 건축을 전공하는 사람이었는데요. 제 글쓰기, 한 마디로 프로덕션에 관한 태도는 그쪽에서 많이 나왔습니다. 건축과의 프로그램에는 스튜디오라는 것이 있습니다. 실기죠. 한 마디로. 일정 콘셉트나 테마를 놓고 건물을 디자인하는 수업인데요. 항상 그 프로덕션 자체를 만드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생각을 말로써만 표현하는 것에 대한 말의 휘발성, 이런 것들에 대한 경계랄까요. 그래서 교수와 1대1로 수업을 한다거나 그러면 말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모델이랄지, 도면이랄지, 이런 것들을 만들어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항상 교육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결과 비슷한 시각에서 글에 접근을 해요. 항상 특정한 현상, 특정 음식에 대한 생각이 분명히 있지만, 그것을 글로 표현하지 않았을 때 완성이 안 됐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생각하는 그 자체도 있지만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일종의 문제 해결과 지시점의 결정과정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제 홈페이지에 자유롭게 쓰는 글에서도 수많은 결정을 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지만 원고료를 받고 매체에서 글을 쓰는 입장이라면, 항상 톤의 매너랄지, 그리고 지면에 굉장히 한정된 것은 이런 것들 속에서 어떻게 내가 하나의 주제를 놓고서 효과적으로 의사를 전달할 것인가. 많은 측면에서 생각해봐야 하거든요. 하다못해 단락의 크기까지. 예를 들어서 원고지 열 매 분의 글을 쓰는데 과연 이것을 지면에 실었을 때 다섯 줄짜리 문단이 몇 개쯤 오면 글을 읽기에 시각적으로 보기가 좋을 것인가. 이러한 모든 과정이 본질적으로 글을 통해 다뤄야 할 주제와 대상과 함께 일종의 시너지 현상을 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임근준: 비평의 사회적인 용도가 뭐냐고 하면 글쎄요, 뭐 답을 여러 가지로 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어쨌든 평론이라고 하는 거는 하나의 예술작품이건 혹은 예술작품이 아니라고 해도 인간이 어떤 특정한 필요에 따라서 만든 물건들에, 보면 인간의 정념이 깃드는 거잖아요. 그게 음식 비평이건 음악 비평이건 디자인이건 미술이건 기본적으로 모든 비평의 기본 단위로 볼 수 있는 게 사물이나 대상에 어떤 정념이 깃들어 있느냐, 라는 것으로 볼 수가 있겠죠. 그리고 비평가의 역할이라고 하면 정념이 사물에 깃드는 방식의 어떤 시대적인 추동, 동력이라는 게 있고, 그것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문제적인 지점이 있고 그것을 가시화하고 담론화해서 어떤 동세, 새로운 동세를 창출하는 게 비평가의 가장 큰 역할이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우리 시대에 예술이 처해있는 차원 중 시각성 차원에서 가장 문제적인 차원을 찾고 그것을 담론적으로 가시화해서 어떤 동세, 긍정적인 동세를 만들어내는 게 언제나 저는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답변 드리면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김용언: 저는 여태까지, 제가 사실 평론을 직접 썼다기보다는 평론가들에게 글을 청탁을 하고 그것을 싣는 것을 주로 했던 입장인데요. 되게 오래된 얘기들이 있잖아요. ‘평론가는 실패한 창작자다’라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은 도저히 찬성할 수 없는, 굉장히 얄팍한 얘기라고 생각을 해요. 왜냐면 비평이라는 것 또한 하나의 굉장히 독립된 영역이거든요. 이게 작품이 있고서 비평이 있다는 면 때문에 그것이 굉장히 종속적인 일종의 주종관계처럼 보는 일차원적인 시선이 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요. 물론 새로운 세계를 구축을 하고 창작을 했다는 것 자체는 당연히 존중받아야 하지만 문제는 그 작품이 좋으냐 아니냐를 따져야 되는 거잖아요. 이를테면 순문학과 SF와 미스터리와 판타지 사이에 위계 관계가 있다고 보고 어떤 것을 되게 하류 취급을 하는 그런 시선들이 있는데 잘 쓴 소설이 있을 뿐이지, 장르적으로 다르다는 이유로 평가 절하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것처럼 평론 역시도 좋은 평론이 있는 거고 나쁜 평론이 있는 거고 저는 그 좋은 평론이 무엇이냐를 가지고 얘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평론가라는 게 굉장히 종속적인 위치라는 얘기는 잊어버리고 거기서 창작자가 만들어놓은 어떤 작품을 정말 잘 얘기를 할 수 있는 좋은 평론이 있느냐 그거를 찾는 게 우리한텐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 창작자가, 본인이 작품 속에 숨겨놨을, 자기에 대해 얘기를 하기 위해서 그것을 드러내기는 싫기 때문에 잘 꽁꽁 숨겨놨을 어떤 의미, 혹은 본인이 미처 의식을 하지 못했지만 이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영향 받았던 무언가가 그 작품 안에 창작자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들어가 있을 때 그것을 읽어낼 수 있는. 어떻게 보면 저는 평론가는 창작자보다 더 깊은 시선, 더 조망할 수 있고 더 깊게 멀리 볼 수 있는 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왜냐면 창작자는 자기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에 온 정성을 기울이지만 비평가는 거기서 또다시 한 발짝 뒤로 물러서고 그 작품과 그 작품을 둘러싼 세계까지 같이 보고서 그것을 글로써 혹은 뭐 어떨 때는 강연이라는 말의 형태로써 다시 한 번 그것을 완결을 지어야 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더 힘든 작업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작품을 만들었다, 나는 창작자다, 라고 했을 때 그 작품을 누구도 봐주지 않는 상황에서 그거는 아무 의미가 없는 거잖아요.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고 읽힐 수 있고 얘기될 수 있게끔 연결지어주는 사람이 분명히 필요하기 때문에 평론이 글 혹은 말로써 완결이 됐을 때 비로소 그 작품조차도 완결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되게 자족적인 거에 만족을 한다면 작품을 만들었을 때 아무도 보지 않아도 상관없겠지만 그게 아니라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나의 작품을 가지고 뭔가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는 사람에게는 그 작품을 가지고 누군가가 평가를 해주고 좋은 평론을 해주고 자리매김을 해줬을 때 비로소 그 A, B가 완성이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소영현: 네. 그냥 제가 비평에 대해서 생각하는 바에 대해서 말씀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비평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서 질문하시는 것 같은데, 일단 전 기본적으로는 비평의 2차성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고요. 텍스트를 읽는 건데 물론 어떤, 비평의 본래적인 정의라는 게 뭐뭐에 대한 사유, 혹은 글쓰기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뭐뭐에 대한이라고 하는 게 뭐뭐 안에는 뭐든지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문학, 건축, 미술 등등 그런데 뭐뭐에 들어가는 텍스트라고 할 때 땡땡을 읽는 거지만 사실은 땡땡 너머에 땡땡화된 현실을 읽는 거겠죠. 그게 사회든 현실이든, 저는 비평이 결국은 사회를 읽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텍스트화된, 뭐라 그러나요. 프리즘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거를 통해서 사회를 읽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비평의 사회적 기능은 어떻게 보면 저는 불필요한 질문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제가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비평 작업은 세 가지로 정리가 가능합니다.

이거는 제가 항상 생각하는 건데 하나는 문학사가로서의 비평의 작업, 하나는 문학이론가로서의 비평의 작업, 하나는 서평가로서의 비평의 작업인 것 같아요. 원래 무언가를 판단하려면 어떤 맥락 속에 있어야 판단이 가능한 거니까 얘 자체로는 얘가 의미가 있냐 없느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거고, 맥락이 보여야 되는 건데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이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 찾는 것은 문학사적인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런데 문학 이론은 이런 거죠. 1960년대에는 신춘문예에서 시조를 공모했었거든요. 시조 같은 거는 조선시대 후기에나 썼을 것 같지만 계속 읽었어요. 계속 썼어요. 이게 되게 신기한 일이거든요. 그러니까 문학이라는 범주 안에 시조가 들어가 있었다는 거예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문학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그런 걸 보았을 때 문학이 뭐냐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 필요한 건데 문학이론작업이라는 게 그런 거란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면 여태까지 영화 같은 경우는 문학이 아니었죠. 당연히 아니었고 문학 연구하는 사람들이 영화를 연구하면 그건 문학 연구가 아니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문학 연구하는 과에서 영화, 만화, 심지어 이런 것들을 박사논문 석사논문으로 써요. 문학의 범주가 완전히 바뀐 거죠. 끊임없이 문학이 뭐냐, 이 범주의 경계가 제대로 된 거냐, 질문하는 거.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문학의 어떠한 관념과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이념상으로서의 문학이라는 게 일치하느냐, 이런 질문을 먼저 던지는 거가 문학이론작업이고요.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텍스트를 명확하게 읽어낼 수 있어야 되니까 그런 작업 세 개를 요약하자면 제가 하는 비평 작업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백지원: 소영현 선생님께서는 비평의 2차성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또 한편으로는 비평이라는 것은 텍스트를 읽으면서 텍스트에 표현된 사회를 비평하는 거라고 하셨잖아요. 그렇다면 평론가는 전문가이거나 지식인으로서 활약을 한다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러니까 자기 분야의 지식을 체계화하는 이론가로서의 작업이 있고, 또 선별을 해서 서평을 하는 해설자로서의 작업이 있을 테고 그리고 또 특정 분야 대표로서 발언권을 갖고 사회 전체에 대한 평론을, 논평을 내놓는 역할도 가끔 기대가 되지 않나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평론가는 어떤 자신의 전문 분야, 해당 분야와 얼마나 밀착해서 활동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소영현: 사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비평이라고 얘기를 많이 하지만 비평이라는 말이 일상화된 거는 문학비평으로서의 비평에서 출발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분들이 비평이라면 떠올리는 건 일반적으로 문학비평일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이것도 원래 오래 전부터 비평하면 문학비평이었던 게 아니고 1970년대부터 만들어진 거거든요. 이렇게 예를 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밥 먹으면서 그냥 일상적으로 나누는 대화중에 드라마가 굉장히 많잖아요. 한국을 강타하고 있는 거는 드라마의 힘인 것 같아요. 그리고 식탁에서 밥 먹으면서 지식인들도 드라마를 얘기하는 거에 대해서 조금의 부끄러움이 없는, 너무나 당연한 시대가 되었죠. 그런데 이게 좀 상상하기 어려우시겠지만 조금 더 전 시기로만 돌아가도 드라마를 지식인이 얘기하는 건 되게 부끄럽게 여겼던, 실제론 집에 가서 다 보시면서 나와서는 전혀 안 보는 척 하는 그런 시절이 있었거든요. 지금은 이제 드라마 시대가 온 거예요. 그런 것처럼 90년대는 영화의 시대였다고 얘기할 수 있고 70년대는 문학의 시대라고 얘기할 수 있거든요. 70년대, 80년대만 해도 이상문학상이 1년에 한 번씩 상을 주고 선집 같은 걸 내면 모든 대학생들이 그걸 사서 보는 거예요. 보진 않죠. 그냥 사서 꽂아 놓겠죠. 그런데 너 이번에 샀니? 너 이번에 그 작품 읽어봤니? 이런 대화를 던진다는 거죠. ‘내가 교양 좀 있어’라고 말할 때에는 그런 걸 사서 얘기를 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다 무너졌어요. 문학이 교양의 대표였던 시절에 문학비평이 곧 비평이었던 시절도 있었던 거고, 그런 담론이 만들어진 게 1970년대라고 생각이 들어요. 죄송한데 질문이 뭐였죠?

백지원: 평론가가 하는 일이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우는 게 더 중요할까 지식인으로서 사회에 대한 논평을 내놓는 게 더 중요할까 이런 질문이었습니다.

소영현: 그게 사실은 통합됐던 시기가 1970년대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일반적으로 비평 작업을 하던 사람들과 문학 내부로 진입해서 문학비평을 하던 사람들 사이의 경계가 희미했던 그 당시의 비평가를 비평가지식인이라고 표현을 해요. 여러분 잘 아시는 백낙청 선생님은 그냥 문학비평가는 아니잖아요. 지식인이죠. 사회에 대한 어떤 얘기도 하시는 분들인데 그런 어떤 역할이 만들어지고 그런 위치가 만들어졌던 건 1970년대이고, 그 시기만 해도 지식인과 문학비평가가 겹치는 자리에 놓여있었는데 그게 서서히 분화되기 시작하죠. 왜 그러냐 하면 비평이라는 게 굉장히 불안정한 위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시조가 문학 안에 들어갔었지만 비평은 문학이 아니었거든요. 비평은 그냥 별도예요. 아까 김용언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마치 문학하려다 실패한 사람들이 비평하는 것 같은 그런 담론이 있었고 문학 범주 안에 비평은 안 들어갔던 거예요. 그런데 그런 비평의 위상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이 만들어지면서 비평이 문학 범주 안으로는 들어갔어요. 안정성을 획득을 했죠. 그런 반면에 비평 작업이 문학으로 축소됐다고 저는 생각해요. 사회 전반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게 아니라 문학에 대해서만 논의를 하는 거죠. 예전에는 문학과 비평이 공존하는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면 1970년대부터 문학의 하위범주로 비평이 들어가서 마치 비평은 문학비평, 문학 안에 있는 좁은 하위범주 중에 하나인 것처럼 이해되기 시작했어요. 그걸 기점으로 보니까 이전에 굉장히 불안했었지만 의미 있는 작업이었던 비평의 작업이 안정됐지만 영역이 축소된 그런 시기로 넘어간 것 같아서 이거에 대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봤어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1970년대를 계속 얘기하고 있는 거고요. 비평의 기본이 그렇다, 그리고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문학과 비평 사이에 교집합뿐 아니라 빈 곳이 있다, 그 빈 곳을 되살리는 게 비평을 회복시키는 길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게 적절한 답변인지는 모르겠으나.

임근준: 제가 추가말씀을 드리자면 사실 우리나라에서 대사회적으로 비평가가 지식인으로서 커다란 거대담론에 대해서 발언력을 행사하는 데에는 일본을 통해서 평론을 이해했기 때문에 비평가의 역할에 두 가지 영향이 겹쳐져 있다고 생각해볼 수가 있어요. 하나는 일본에서는 효론가(評論家, ひょうろんか)라고 하잖아요. 평론가들이 거의 모든 사회 문제에 대해서 발언을 할 수 있죠. 그게 서양하고 좀 다른 측면이 있거든요. 보면 번역문학가셨던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도 일본 지식인사회에서 효론가로 활동을 하면서 여기에 대한 발언을 아주 자주 하셨거든요. 특정 분야의 비평가들이 자기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 전반의 문제에 대해서 발언력을 행사하는 것은 일본의 특징이다, 라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는데요. 그게 보면 일본 식민기 때부터 우리가 일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사실은, 지금 70년대 말씀을 강조를 많이 해주셨지만 이미 일본 식민기 때나 해방 이후의 1950년대의 상황에서도 우리나라의 지식인들, 비평가들이 사회전반의 문제에 대해서 발언력을 행사한 예가 있죠. 그거는 절대적으로 일본 문화의 영향을 받은 거라고 볼 수가 있고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야기가 자꾸 겹쳐지는 부분이 있는데 그게 뭔가 하면 원래 비평가라고 하면 어쨌든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작품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사회라고 하는 게 있고 그게 자연일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그 작품이 물화되는 과정 이 앞의 단계에 대해서 원래 비평이 이야기를 해왔죠. 그런데 1970년대 후반, 중후반에 포스트모더니즘이 만들어지면서 작품이 사회에 소통되는 방식, 소비자와의 관계에 더 방점이 놓이게 되면서 비평가들이 이제 문화비평으로서 대중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게 된 거죠. 이 커다란 변환의 과정에서 역시 비평가들이 대사회적인 발언력을 크게 행사하게 되는데 전통적으로 효론가로서의 대사회적 발언력과 1970년대 중후반에 등장한 대중비평가로서의 역할은 사실 좀 달랐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전통적인 귀족 계급의 자제들이 집안 말아먹으면서 예술가도 포기하고 실패한 예술가로서 이제 비평가가 되어서 대사회적으로 전반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시대가 있는 거고 우리나라에서도 보면 1970년대 후반에 이제 <뿌리깊은 나무>가 만들어지지 않습니까. 그러면 <뿌리깊은 나무>에서 서구식 에디터십을 발휘해서 비평가를 길러내기 위해서 새로운 종류의 예술사회학적 입장을 갖고 있는 필자들을 길러내는 거죠.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민중미술의 비평가들이 원래 <뿌리깊은 나무>에서 익명 비평으로 칼럼을 쓰면서 주류 미술계를 공격을 하다가 인기를 끌자 나중에 실명을 공개하면서 스타덤에 오르게 되는데 그 대표가 성완경 선생님이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가지의 역사는 좀 구분해서 놓고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보면 우리 한국현대미술계를 보더라도 이미 비평가의 역할은 초기 근대화 과정에서 중요했어요. 예를 들면 오세창 선생님이 미술품을 수집하는 수집가로서의 자기 위상에 만족하지 않고 한국의 미술품들을 모아서 화첩을 만들고 거기에 대해서 이제 논평을 붙여서 초기적인 비평을 시도하는 게 <근역서화진>이라는 책이 있고요. 근역이 이제 무궁화동산이라고 해서 조선을 뜻하는 거겠죠. 근데 그 당시에는 이제 우리가 독립국이 아니었으니까 우회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거고 그리고 이미 1950년대에 4.19를 기점으로 달려 나가게 되는 앙포르멜 미술 운동에서도 리더 역할을 한 거는 작가들도 있었지만 박서보 선생님과 함께 앙포르멜 미술운동을 견인했던 인물이 방근택이라고 하는, 지금은 잊힌 미술비평가입니다. 그리고 195,60년대, 그리고 70년대까지도 주요 일간지에 지면에 미술비평가들이 직접 아주 어려운 글을 썼어요. 지금 읽어도 이런 게 어떻게 일간지에 실렸을까 싶은 글들이 비평으로 실렸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1970년대 후반에 대중 비평으로서의 전환이 이루어지기 이전에는 본격적인 비평들, 문학비평, 미술비평, 음악비평이 일간지에 실려서 일간지가 사실 요즘 일간지와 다른 거죠. 지식 계층이 읽는 매체였기 때문에 보면 1970년대 이전에도 사실은 대사회적으로 볼 때에 비평이 상당한 권력을 누렸던 시절이 존재합니다. 근데 이제 70년대에 어떤 변환이 존재했고 그것이 우리나라에선 <뿌리깊은 나무>로 대변되는 어떠한 미디어환경의 변화와 맞물려있는 문제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대사회적 발언력이라고 하는 것도 저는 둘로 나눠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역사적으로 효론가로서의 대사회적 발언력, 귀족 자제로서 지식인으로서 사회를 이끄는 인물들의 발언력과 그 이후에 등장한 교육을 통해서 계급상승을 이룩한 대중문화비평가로서의 비평가들의 사회적 발언력 두 개는 상당히 질이 다른 거라고 생각을 해요. 예를 들면 <뿌리깊은 나무>에서 대사회적 발언력을 획득했던 비평가들의 대표라고 하면 처음으로는 총리까지 했던 우리 한완상 선생님, 젊은이로 꼽자면 마광수 선생님 정도가 1세대라고 볼 수가 있겠죠.

소영현: 아, 네. 많이 배웠고요. 저는 문학 비평의 차원에서 말씀을 드린 건데 미술 비평의 경우에는 그랬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데 일단 다른 거에 대해서는 제가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재미있게 생각하고 좀 공부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한 가지만 말씀드리자면 식민지시기에 저는 어떤 대사회적인 발언을 했던 비평가가 그렇게 많았나, 한국사회에, 두 가지만 좀 제가 궁금하고 확인이 필요하다 그러는 거는, 하나는 뭐냐면 이런 비평가‧평론가라는 게 일본으로부터 온 거다 말씀하셨는데 사실은 서양에서도 저는 대사회적인 발언을 했던 비평가들은 많이 있었다고 생각하고요. 여전히 많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거는 오히려, 이거는 비평가의 문제라기보다는 인문학의 문제로 접근할 문제라고 생각을 하고요. 인문학이 완전히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면서 벌어진 비평의 전문성이 야기한 문제이기 때문에 인문학적인 차원에서 대사회적으로 발언을 하는 사람들은 서양에서도 많이 있죠. 그게 일본에서 온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솔직히 약간 의구심이 들고요. 한 가지는 말씀드린 것처럼 1970년대 이전에 그런 게 뚜렷하게 형성되었다가 이전에는 분명히, 딴 건 잘 모르겠고요. 문학의 경우를 말씀드리자면 핵심은 창작이었고 비평가가 단 한 번도 장을 꾸려본 적은 없거든요. 그리고 문학평론가라고 하는 사람들의 출신이 유명한 평론가들이 몇 사람 있어요. 최재서, 김남천 이런 사람들이 있는데 창작을 겸했던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고요. 창작을 안 한 사람 중에는 여러분 잘 모르시는 유원조, 최재서 이런 사람들이 있는데요. 이런 사람들은 영문학 전공자고 경성제대 출신이에요. 그러니까 일본어 공부하고 일본적인 지식을 많이 배웠기 때문에 한국 문학에 대해서 뭔가 언급하고 그럴 수 없었던 상황이었고 문학의 차원에서 보자면 이전에 비평가가 그렇게 영향력을 발휘한 적은 거의 없었고 대사회적인 발언은 당연히 안 했고 이거에 대해서는 제가, 문학 범주 너머에 대해서는 다른 어떤 시각이 있구나, 이런 거에 대해서.

백지원: 두 분 선생님들께서 말씀을 해주셨는데 사실 지금 현재 상황에서 저희가 보기에는 미술이라든가 문학 같은 경우에는 상당히 평론가가 생산 과정에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다고 보이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문학 평론가 같은 경우에는 소설가나 시인이 등단할 때 심사를 하고 또 어떤 담론으로서 그 장 안에서 영향을 직접 미치기도 하고 미술평론가 같은 경우에도 큐레이터와 작가와 협업을 해서 전시를 기획한다든가 아니면 앞으로 나아가야 될 작업의 방향을 제시한다든가 이런 역할들을 많이 하고 있잖아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생산양식에 개입하는 게 조금 제도화가 덜 된 분야에서의 비평도 있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이거에 대해서 이용재 선생님이나 김용언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생각을 하시는지요. 평론을 하면서 어떤 독자를 주로 대상 독자로 생각을 하시고 어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어떤 효과를 미치기를 원하시는지 그런 것들을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이용재: 사실 제가 2년 전에 처음 단행본을 쓸 때 잠깐 슬럼프가 있었습니다. 과연 어떤 책을 쓸지, 주제라든지 소재 같은 것들은 명확하게 잡아놨는데 톤의 매너 같은 것에 대한 정확한, 뭐랄까요, 기조를 못 가지고 있던 때가 있어서. 담당 편집자가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어떤 독자를 상정을 해봐라. 어떤 사람이 이 책을 읽기를 원하는가. 그 대답을 찾으면 과정이 좀 쉬워질 것이다. 결국은 그 슬럼프를 넘어서서 책을 썼습니다만 솔직히 누군가가 읽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왜냐면 그냥 제가 가지고 있는 주제나 소재를 어떻게 최선으로 엮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다보면 과연 이 책을 내놓으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 이 책을 어떤 사람이 읽을 것인가, 서울시 강서구에 다니는 20대 남성이 읽을 것인가 이런 것에 대한 생각을 전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이 장점인지 단점인지에 대해서는 저도 아직 결론을 못 내렸고요. 또한 그러한 차원에서 말씀을 드리자면 음식에 대한 담론의 생산자로서 저는 그냥 개인의 목소리를 낸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내가 누군가를 대표하는가, 내가 어떠한 단체를 대표하거나 어떠한 씬을 대표한다거나 아니면 제가 여러 가지 창구를 통해서 쓰는 글이 어떠한 특정 집단에 영향을 미칠 것을 미리 기획한다거나 그런 생각을 사실 못하게 됩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어떻게 보면 저는 효과적인 생산에 대한 생각에 좀 지나치게 함몰되어 있다고 할까요. 개인으로서 제가 만들어낸 담론이 개인에게 가는 것. 그것이 집단을 겨냥한 것, 한국 20대 중 음식에 관심 있는 남자, 여자, 이런 식이 아니라 어떤 개인에게 갈 수 있는.

백지원: 예를 들자면 음식을 만드는 생산자에게 주로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시는지 아니면 소비자들이 먼저 이것을 볼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시는지요.

이용재: 그 생각을 전혀 사실 못하고요. 그 생각을 안 하게 됩니다. 왜냐면 저는 사실 제가 하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산자에게 영향을 미치고 이런 말씀 하시는데, 저는 한편으로는 거리를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제가 만들어내는 어떤 대상과의 거리? 독자와의 거리도 중요하고요. 음식 같은 경우는 생산자와의 거리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감정적인 측면에서의, 예를 들어서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지만 그것이 감정이나 감성적인 부분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거는 어떻게 보면 선동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글이 어떤 누군가에게 특정한 역할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의식적으로 하지도 않고 또 생각을 하려도 할 수 없어지는, 여기까지 얘기할까요.

김용언: 아까 나왔던 얘기랑 좀 맞물려서 지금 두 번째 질문까지 얘기를 하자면요. 다른 분야는 잘 모르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영화 비평이다, 라고 했을 때 저는 일단 전문가가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식인이 아니라 전문가가 먼저 필요하고. 근데 그게 그 전문가가 나오기 위해서는 뭐냐면 역사가 확정이 되어야 하는 거거든요.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나올 수는 없는 거예요. 뭐든지. 작품도 평론도. 이를테면 한국 영화가, 물론 60년대 어떤 작품이 있고 70년대 어떤 작품이 있는지 이런 것들이 있지만 사실 그 작품들이 되게 남달랐다는 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거꾸로 우리가 90년대 말에 정말 폭발적인 르네상스라고 하는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영화가 정말 질적으로 전환을 했던 과정이 있으면서 그런 작품들이 나오고 매체들이 마구 생성, 산업이 폭발하면 매체들이 나오게 되잖아요. 매체들이 그 작품들이 얼마나 뛰어난지에 대해서 기존의 방화와 이 영화들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그러다보면 이 작품을 둘러싼 꾸밈의 원리를 얘기하기 위해서 찾아보고 하면서 60년대 70년대의 어떤 평론 관계가 단지 그런 것만이 아니었고 우리가 미처 몰랐던 어떤 그룹이 있다, 라는 거를 캐치를 하고 그거를 독자들한테 전파를 하고 그러면서 영화제가 생기고 그것을 다시 회고전을 틀고 독자들은 더 생겨나고 그 영화를 보면서 담론이 형성되고 이 산업의 모든 것들이 맞물리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한다고 생각하는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그것을 정확하게 봐주고, 정확하게 과거의 유산과 현재진행형의 무언가를 연결시킬 줄 아는 그런 전문가가 필요한 건데 문제는 그것이 어떤 하나의, 임계점 같은 거에 도달을 하고 나서 이게 막 성장을 하다가 평평하게 가거나 서서히 쪼그라드는 어떤 상황이 왔을 때 그러면서 명백하게 저는 이 평론가의 위치가 되게 도드라지게 보인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게 정말 다 맞물리는 건데 작품들도 앙상해지고 평론들도 앙상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매체들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되게 앙상해질 수밖에 없는 거고. 그랬을 때 대중적인, 전문가가 아니라 소비자와의 피드백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업적인 상황에서 하면 더 이상 전문적인 얘기하는 사람들이 아, 재미없다고 무슨 그렇게 고리짝 같은 얘기 하고 있냐고 하고 지금 우리의 얘기가 하고 싶다고 했을 때 거기에는 굉장히 독자들, 관객들, 소비자들에게 약간 좀 매달리게 되는 글을 쓸 수밖에 없게 되고 그러면서 이것이 전문가의 위상이라기보다는 굉장히 이것저것 이렇게 좀 끌어들여서 쉽게 편하게 재미있게 얘기할 수밖에 없는 해설로서의 글로 축소가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영화제에서 일을 할 때 그런 것들을 되게 많이 생각을 했었는데 거기서 두 번째 얘기까지 끌고 오자면 어떤 독자들이 필요한가, 창작자가 아닌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어떤 게 필요한가라고 했을 때는 역시나 그 싸움은 역사가 있음으로써 독자들이 소비자들이 발생할 수가 있을 텐데 사실은 오해받는 독자들은 그거예요. 정말. 눈이 밝은 사람을 원하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지금 이제 제가 잡지를 만드는 입장에서 생각을 한다면 미스터리 소설 마니아가 1차적인 독자층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저는 사실은 그냥 재미있는 소설을 읽는 사람이 독자라고 지금 상정을 하고 있거든요. 소설을 읽을 때 무엇이 재밌는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게 순문학이 아니다 하더라도 거기에 대해서 전혀 구애받지 않아요. 한국소설이냐 일본소설이냐 서양소설이냐에 대해서도 구애받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재미를 찾으려면 되게 적극적으로 이것을 탐색을 하는 독자들이 출현을 하게 될 텐데 그 독자들을 이제 찾아보고 싶은 거죠. 한국 미스터리 소설계의 붐업을 시키기 위해서. 정말 지금 작은 수준인데, 이거를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야되는 거고 정말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야 되는 거고, 그러면서 약간 어려운 부분이 책들 사이에서 오가고 있는 독자들을 끌어당길 수 있어야 되고 그런 독자들을 찾고 있는 거예요.

임근준: 아까 김용언 선생님께서 비평가가 실패한 창작자가 아니다라고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저는 뭐 반농담 반진담으로 말씀드리면 훌륭한 비평가는 대부분 실패한 창작자죠. (웃음) 훌륭하게 실패한 사람이 훌륭한 비평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솔직히 비평가들이 원래는 자기 분야에서 창작을 하다가 이 그지 같은 거 도저히 못해먹겠다 생각하고 때려치고 나라도 비평을 해야겠다 해서 비평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죠. 특히 비평가에게 많이 도움이 되는 정신적인 태도가 말년성의 정신태도라고 볼 수가 있는데, 말년성이라는 게 꼭 늙어서 은퇴하고 난 뒤에, 다 이루고 난 뒤에 내가 이룩한 걸 다 무너뜨려야지 하는 말년성도 있지만 일찌감치 말년성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실패한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이 결국은 특별한 성찰력을 확보해주는 말년성을 확보해주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게 역시 비평가들한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이용재 선생님도 건축 그만두시고 음식을 하시기 때문에 사실 비평을 더 잘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리고 어쨌든 각 분야나 혹은 장르마다 친연관계가 있고 그 관계 속에서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자기만의 위치라고 하는 게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발생하는 남들은 조망할 수 없는 특별한 위치에서의 퍼스펙티브가 나오기 때문에 그게 비평가한테 굉장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저도 사실은 원래 학부 때 전공이 디자이너였고 그리고 90년대 중후반에는 계속해서 작가 겸 디자이너로 활동을 하다가 이제 비평은 겸직을 하다가 2000년 넘어오고 나서부터 비평 쪽만 하고 창작은 그만두게 되면서 전업 필자가 되었습니다만 그게 어쨌든 그런 전사들, 흑역사가 쌓여서 특별한 비평적인 성찰력을 확보해주는 경향이 저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서, 비평가가 실패한 창작자라고 말하는 게 어떻게 들으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지만 저는 사실이라고 생각해요. (객석 웃음)

그리고 이제 비평가가 전문성을 띠는 게 더 중요하느냐, 아니면 제너럴리스트로서 일반적인 평론가, 대사회적인 발언권을 갖는 평론가로서의 역할이 중요하냐, 그리고 창작자와 밀접한 관계가 중요하냐, 이거는 답은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현재에 우리나라에서 각 분야를 막론하고 평론이 처해있는 문제를 보자면, 이제 대부분 젊은 세대에서 평론가들이 잘 안 나오는 경향, 그리고 평론이 나온다 하더라도 기존의 다문화적 얼개에 두드려맞춰서 글을 써내는 일종의 거의 ‘봇’에 가까운 역할들을 하고 있는 이런 모습이 왜 나왔느냐를 이야기를 좀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90년대에, 우리나라는 좀 늦었지만 어쨌든 문화이론이라고 하는 포스트모던 방법론을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서, 예를 들면 우리 미술 동네에서는 정통적인 미술사 중심이 아니라 미술 이론, 메타차원에서 담론 분석을 하는 연구들, 신미술사학이라고 하는 것, 신미술비평이 들어오게 되고 그에 따라서 이제 보면 한때 이게 아주 크게 발전했던 시기가 있죠. 그리고 나서 학회가 엄청나게 많아졌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 다음 세대, 2세대에 공부하는 학생들은 석박사 논문을 쓰고 학회를 춘하추동으로 돌아야 되니까 작가들과 만날 틈도 없고 만날 이유도 없게 되는 거죠. 그렇게 되면 기존의 포스트모던 담론에 맞추어서 논문을 써내고 계속해서 활동하는 것이 그 자체로 아트가 돼버리다 보니까 또 거기 끼지 않으면 절대 강사가 되고 대학교수가 되고 혹은 연구원이 되고 업계 내에서 생존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에 작가들과의 접면이 점점 좁아지게 되는 거죠. 그러면 창작 과정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지고 글을 써내면 아무래도 포스트모던 1세대들이 갖고 있던 특별한 필력, 직관력에 비해서 굉장히 질이 떨어지는, 작품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글들이 생산되는 게 악순환의 구조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대표적으로 이 병폐가 심하게 드러난 부분이 영화비평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영화비평은 우리나라에서 운동권들이 입봉을 해서 영화를 일구지 않았습니까. 부산영화제와 맞물려서. 그때 1세대 비평가들은 사실은 정식적으로 영화 평론을 공부한 분들이 아니었죠. 다 여기저기서 다른 전공을 하고 영화계에 들어온 운동권들이 그 역할을 맡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 정식으로 학교에서 영화이론을 공부하고 해외유학을 마치고 돌아오신 분들이 한국사회에서 비평가로 발언권을 행사하면서 작가들과 함께, 영화감독들과 함께 필드에서 뭔가 해보고자 했을 때 윗세대, 전대 운동권 선생님들이 잘근 밟으시죠. 그러기 때문에 자리가 나오지 않으니까 대부분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다시 해외로 나가서 근대 초기 일본과 관련해서 동아시아 무빙 이미지 연구 쪽으로 도망치게 되는, 똑똑한 평자들이 필드에서 뛰지 못하고 아무도 반박하지 않는 말대답하지 않는 근대 초기 연구로 도망치게 되는 악순환이 있는데 사실 영화계뿐만 아니라 미술계도 비슷합니다. 90년대 후반에 등장했던 똑똑한 이론가들 가운데에서 한국에서 자리를 잡고 현장비평가로 활동하는 분들이 거의 없고, 해외에서 펠로우십 받아가지고 계속해서 근대 초기 이미지 연구를 하고 있는 분들이 많죠. 그래서 이게 정답이 있는 건 아니겠습니다만 현재 한국 사회의 상황에서 보자면 포스트모더니즘 방법론에 매몰되어서 논문을 생산하고 평문을 생산하는 봇 역할을 하는 악순환의 구조는 끊고 다시 작가들과 접면을 좀 넓혀서 실질적으로 과거에 좀 무식했던 초기의 비평 양식으로 작가와 비평가가 함께 이인삼각하듯이 뛰는 시대가 저는 지금은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이게 단점도 있습니다. 비평가의 생명력이 굉장히 짧아지거든요. 대표적인 케이스가 니콜라 부리요라고 할 수 있는데요. 사실 니콜라 부리요가 관계 미학을 내세우고 운동권서적처럼 현황 파악을 해서 문건 형식으로, 팜플렛 형식의 책을 내서 자기 입장을 내세웠을 때 본인도 알았을 겁니다. 자기 생명력이 굉장히 짧아질 거라는 걸. 그래서 보면 98년도부터 비평을 하기 시작했고 그리고 2008년도에 관계미학이 완전히 파산을 했으니까 딱 10년 살고 인생이 끝난 셈이니까 굉장히 억울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죠. 그런데 보면 뭐 환쟁이들도 그렇고 전성기가 보통 길면 10년 짧으면 6,7년이니까 비평가들도 보면 사실 뭐랄까요. 내 몸이 불쏘시개가 되는 걸 감수하고 정확하게 자기 입장을 표명하면서 예술가들과 함께 어떤 특정한 판단유예의 공간을 만드는 그런 좀 뭐랄까요. 자기 몸 아끼지 않는 비평가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과거 구세대들이 했던 역할모델, 학교에 끼어들어갖고 논문을 발표하고 한 바퀴 돌고 강사생활 몇 년 하다가 지방대 교수돼갖고 교수가 된 다음에 제자 괴롭히면서 제자에게 나의 비평적 얼개를 강조해서 내 논문을 밑의 애들 통해서 확장하는 이런 악순환의 다스베이더 같은 세계관은 더 이상 통하지 않거든요. 그러면 이제 새로이 비평가의 사회적 역할을 재창안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결국은 비평가가 있을 자리는 저는 현장이라고 생각을 하는, 올드 스쿨 생각이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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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Yuhyeong Smila Park, 작성일 : 2015.04.30, 조회수 : 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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