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NPO 지원센터

[2016 미트쉐어 컨퍼런스] 페미 액션 모이자_DATA.F+오프너+길동무+페미레인저
작성자 : NPO지원센터, 작성일 : 2016.12.22, 조회수 : 2494
진행개요참가자 자기소개 / 각 모임의 활동 소개 / 질의응답과 자유로운 이야기

누가 이 컨텐츠를 보면 좋을까요?여성주의 모임에 관심이 있는 모든 분!

키워드 3가지여성주의, 모임, 활동

페미 액션 모이자 속기록

 

참여 집단: Data.f, 오프너, 길동무, 페미레인저, @1층 품다

인원: 기록자 1, 각 팀별 발표자 1(4; 혜원, 한주연, 홍시, 성임은), 스탭 1, 신청자 2(감나무, 여리), 페미레인저 멤버 1(이희주)

 

1. <페미레인저 발표> (혜원 of 페미레인저)

왜 페미레인저인가

혜원: 파워레인저에서 따와서 페미레인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네타스키친에서 야매 페미니즘 학교라는 페미니즘 강좌를 진행한 적이 있었어요. 야매 페미니즘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페미니즘의 문턱을 낮춰서 수업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당시에) 많은 분들이 계셨는데 모임이 끝나고 난 다음에 조금 더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서 5명이 여성사 공부를 해보자!’ 해서 모임을 하게 됐어요. (처음엔) 5명이 하다가, 덕성여대 페미니즘 소모임 <노라>에서 한 분을 더 영입해서 총 6명이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페미레인저라 선발도 되거든요.

혜원: 저희는 내규도 만들어서 진행하고 있어요. 스터디 모임을 할 때는 필요없을 것 같아서 내규가 없었는데 다른 분들을 만나고 하니까 우리 모임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정리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내규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내용은) 나이주의를 지양하고, 외모에 대한 발언을 지양하는 것입니다. 프로젝트처럼 남들과 만나는 자리에서는 시작하기 전에 내규를 한번 쭉 읽고 시작합니다.

활동 1: 페미니즘 스터디

혜원: 저희는 올해 1월에 첫 모임을 시작했어요. 이제 1년 되었고, 지금까지 <여성해방과 혁명>, <프랑스 대혁명과 여성> 등 여성운동사 책 위주로 스터디를 했어요. 한 명씩 발제를 하고, 발제문 밑에는 책을 읽으며 들었던 질문을 적어서 전체가 돌아가면서 책을 감상하고 발제자가 맡아서 발제를 하는 식으로 진행합니다.

활동 2: 올어바웃생리 프로젝트

혜원: 미트쉐어 프로젝트로 진행했습니다. 페미니즘에 대해 더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월경의 정치학을 중심으로 생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첫 모임은 각자의 생리 경험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었어요. 생리 롤러코스터를 그리고, 생리를 시작했을 때부터 들쭉날쭉한 상태를 롤러코스터 한 페이지로 만들어서 같이 공유하고, <월경의 정치학>을 읽어보고 공유하는 모임을 가졌어요. 두 번째 모임은, 산부인과 의사인 후니 선생님을 모셔서 제대로 된 의학 지식을 듣는 시간을 가졌어요. 사실 의학, 그리고 큰 틀로 보면 과학이라는 것 자체가 남성중심적으로 구성되어있는 것이 많잖아요. 단순히 의학이나 과학을 불신하는 게 아니라, 많은 여성들이 생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리에 대해 정확한 지식을 가졌다고 하기엔 힘들잖아요. 생리가 가시화되지 않는 것 자체가 여성혐오적인 사회분위기에 영향을 받는다 생각했고 생리에 대해 정확한 지식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사 분은 야매 페미니즘 학교에서 수업을 들었던 분들에게 소개를 받았습니다. 3회차는 생리컵이나 탐폰 등의 생리용품을 뜯어보고 품평회를 하는 시간으로 기획 중입니다.

활동 3: 덕질 소모임 어덕행덕

혜원: 모임원을 구성하고 나니 모두가 빠순이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어서 어덕행덕이라는 소모임을 구성했어요. 아이돌 팬덤과 관련된 논문을 읽고 공부하는 페미레인저 소모임을 진행 중이고, 처음에는 페미레인저라는 이름으로 공부를 하기 위해 만났지만 다양한 활동들을 많이 했거든요. 여러가지 활동을 할 수 있는 능력자로 지내고 있어요. 또 여성혐오적인 아이돌 가사 바꿔쓰기나 가해자 중심적인 기사를 바꿔 쓰는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활동 4: 성명서 발표, 시위 참여

혜원: 모두가 트잉여여서 트위터 이슈들을 빠르게 짚어나갈 수 있었어요. 이번에 #000_내 성폭력 폭로가 크게 이뤄졌잖아요. 그래서 저희도 성명서 하나를 발표했었습니다. 트위터 계정에도 업로드했고요. , 다양한 시위현장에 같이 나가기도 하고요. 최근에 하야집회를 보면 페미존이 큰 역할을 했잖아요. 마치 그런 페미존의 형태처럼, 자기 의사를 밝히고 싶은데 집회현장이 위험하기도 하고 마음이 불안하기도 했는데 같이 참여할 수 있어서 마음의 짐을 덜었죠.

 

실패 경험

혜원: 저희는 크게 프로젝트를 연 게 아니어서 두드러지는 실패 경험은 없고, 아쉬웠던 부분들은 많아요. 카페에서 스터디를 많이 진행했는데, 모여서 페미니즘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앞자리에 앉은 사람이 쳐다보는 일이 좀 있었어요. 다들 생업이 있는 사람들이다 보니까 스터디 활동이랑 병행하기가 힘들어서 어렵기도 했고. 서울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 있는 분들은 모이기가 어려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힘이 되는 것들

혜원: 공부뿐만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같이 할 수 있는 동료를 만났다는 게 안정감이 느껴지고 소속감이 느껴졌고, 프로젝트를 할 때는 단순히 우리끼리만 공부하는 게 아니라 남들을 만나는 자리니까 다들 어떻게 참여해주실까 걱정했는데 프로젝트도 성황리에 끝나서 마음이 좋았습니다.

 

성임은(진행자): 올어바웃생리 프로젝트에서 생리 롤러코스터 내용을 어떻게 구성한 건가요?

혜원(페미레인저): 롤러코스터는 말 그대로 (종이에) 쭉 선을 그어놓고, 처음 생리를 시작한 게 가운데 선이면, 생리에 대한 기억들이 다양하게 있잖아요. 좋았던 기억도 있고 나빴던 기억도 있고. 거기서부터 시작해요. 예를 들면 저는 12살에 생리를 시작했는데, 생리를 한 뒤에 제 친구가 저한테 몸조심을 해야 된다고 해서.. 초등학생인데! 그래서 굉장히 기분이 안 좋았던 기억을 적고, (생리를 하면) 학교에 빠질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런 것도 적어놓고요. 재미있었던 건, 지금 생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담론들이 부정적이고 생리가 힘들다는 의견이 많잖아요. 그래서 내용이 다 비슷하지 않을까 했는데 롤러코스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와서 재미있었습니다.

여리(참석자): (프로젝트에) 참여했었는데, 생리에 대한 기억들을 재구성한다는 게, 사실 그걸 돌아볼 시간이 없잖아요. 그래서 나도 모르고 있었던 부분에 대해서도 기억 회상을 통해서 , 내가 생리에 대해 이런 기분이 있구나하는 것, 내가 현재의 나를 몰랐던 것도 많이 찾을 수 있었어요.

 

성임은(진행자, 오프너):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께서 말해주신 부분 중에 기억에 남는다거나 좋았던 점은? 저도 생리를 하지만, 생리를 주기적으로 하면서도 잘 몰라요.

혜원(페미레인저): 질문-답변하고 이런 것보다는, 선생님이 계속 강조하신 게 의학이나 과학이 딱 정답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많은 연구가 필요하고, 각각의 연구에도 시각이 있는 거니까 그걸 맹신하기보다는 자기 몸에 대해 살펴보는 게 필요하단 얘길 해주셨는데 많이 공감이 됐어요. (궁금하신 분들은) 저희 미트쉐어 콘텐츠 방에 후기가 올라와 있으니 그게 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희주(페미레인저): 생리에 대한 질문도 받고 여성기나 자궁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받았는데 그때 나온 질문 중 하나가 자궁경부암 주사에 대한 거였어요. 저희가 모임을 하기 전에 생리에 대한 세미나 기획해보자고 해서 다른 단체 세미나도 갔었는데, 페미당당에서 하는 세미나도 갔더니 그쪽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신 거랑 저희가 후니 선생님 섭외해서 얘기했을 때랑 내용이 달랐죠. 페미당당에서 하신 분은 산부인과 전문의는 아니고 가정의학과였는데 두 분의 입장 차이가 있더라고요. 보통 자궁경부암 주사를 맞는 게 자궁경부암이 바이러스로 발생하는 흔하지 않은 암이라 맞는 건데요. 저희가 섭외한 선생님은 이걸 당연히 맞아야 한다고 볼 게 아니라, 바이러스로 암이 생긴다고 하면 제약회사가 이게 상업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라는 점을 개인이 고려하여 맞을 필요가 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고민에 빠지기도 했죠.

 

성임은(진행자, 오프너): 자궁경부암 주사가 2-3가지라고 하는데 부작용이 있다는 사람도 있고 맞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어서 그냥 안 맞았어요. 성관계 전에 해야 효과가 있다고 하고, 낭설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되나 생각하던 참에 이런 지식을 아는 게 중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감나무(참석자): 아까 실패경험을 말씀하실 때 스터디 현장이 안전하지 않다거나 생업과 스터디의 병행 문제, 지역 문제를 이야기하셨는데요. 저도 잠깐 책 읽는 모임을 진행해봤어요. 구성원의 2명이 졸업반이고 해서 2달 정도 겨우 진행하다가 흐지부지되었죠. 그리고 저도 페미존에 있었는데, 전국디바협회라고그걸 하고 있거든요. 생업과 스터디와 활동을 병행한다는 것에서 비슷한 느낌이 오는 거에요. 이게 너무 힘든데,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문제지만 어떻게 해결하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혜원(페미레인저): 저희도 아직 일하는 사람도 있고 학생인 사람도 있고 구성이 다양해요. 우선은 방학 기간에는 좀 타이트하게 모이고, 개강하면 한 달에 한 번이라든지 좀 더 텀을 둬서라도 스터디를 진행했어요.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시간이 없고 덜 모이게 되면 흐지부지되어서 사라질 수 있는데, 가끔 모이더라도 계속 모이게 되면, 나중에 다들 좀 더 여유가 생기게 되면 더 자주 모일 수 있으니까요. 그 문제는 저희도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이희주(페미레인저): 계속 고민하는 게, 어차피 이걸 짧게 하고 끝낼 것도 아니고 평생 갈 문제인데 너무 초반에 에너지를 쏟으면.. 사람이 에너지 총량이 다르니까. 자주 못 만나더라도 어쨌든 꾸준히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다들 욕심은 많아요. 일을 크게 벌이고 싶어하는데, 수습이 안 될까봐.

 

성임은(진행자, 오프너): 활동은 주로 누가 주도하나요? 6명이 다같이 하는 편인가요?

혜원(페미레인저): 단톡방에서 누가 한번 모이자고 하면, 다음엔 또 언제 모이자고 다른 사람이 제안하고 (그런 식이죠).

홍시(길동무): 모임 진행할 때 참여하는 사람들이 몇 명 정도인지, 연령대는 어떤지?

혜원(페미레인저): 롤러코스터 모임 때는 참여자가 많지 않았는데 다 20대 여성이었고요. 두번째 모임(강의)는 다양한 분들이 많이 오셨어요. 부부가 오기도 했고, 친구와 온 분도 있었고, 다양하게 많이 오셨죠.

홍시(길동무): 열댓명 정도인가요?

혜원(페미레인저): 그렇게 큰 모임은 아니고 한 대여섯명 정도요.

 

 

2. <오프너(OPEN HER) 발표> (성임은 of 오프너)

성임은(오프너):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가 첫 질문인데요. 저의 펨력의 시작은 2014년 총여학생회를 시작하면서였어요. 뜬금없이, 생각지도 못하게 소속감을 찾다 보니 총여학생회에 들어가게 되었죠. 그 당시에는 여성주의나 페미니즘에 관심도 없었고 총여학생회는 왜 있어?’ 했었는데, 학교에서 아웃사이더였고... 챙겨주는 선배도 없고 동기들 몇몇과 놀던 시기에, 갑자기 어떤 언니가 임은아, 너 총여학생회 같이 할래?” 해서 총여학생회가 뭐에요?” 하다가, 소속감을 찾다 보니 갑자기 들어가게 되었죠. 2014년에 총여학생회 활동을 1년 동안 하면서 갑자기 삶이 바뀌었어요. 갑자기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게 되고, 학교-집만 반복하다가 1년 간 열심히 총여 활동을 하면서 이제 여성주의에 눈이 떠졌죠. 그래서 뭘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2015년에 총여 언니들이 졸업을 해서 혼자 남게 되었고, 학생회를 다시 이어나가기엔 여력이 되지 않아서 교지를 만들기로 다짐했어요. “그럼 여성주의 교지를 만들어보자, 여성주의 감수성을 뿌려보자해서 지인들과 뭉쳐서 5명으로 시작했죠. 처음엔 여성주의 교지 소모임으로 시작했죠. 예전엔 페미인 걸 숨기고 학교를 다녀서 동기들도 잘 몰랐고, 학생회를 한다고 해도 총여라고는 생각을 못 했는데 드디어 페밍아웃을 하고 여성주의 교지를 만들 건데 너희도 해볼래?” 라면서 여성주의의 여 자도 모르는 애들한테 많이 제안했어요. 10명한테 제안했는데 그 중의 3명이 한다고 했고 총 5명이 시작했죠.

성임은(오프너): 창간호를 내고 나서 2016년에 공고를 냈는데 총 6명이 지원해서 지금은 총 8명이 활동 중이에요. 지금까지 어떤 활동을 했냐면, 미트쉐어의 지원을 받아서 했고요. (미트쉐어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 당시에 동국대학교에서 <별난 소리를 외치다> 라는 사업 제목으로 진행을 했어요. 당시엔 교지가 처음 나오는 거라 홍보활동에 주력했죠. 보틀을 나눠주는 무료 나눔을 했고요. 엄청 예쁘게 잘 나와서 다들 좋아해주셔서 대숲(동국대 대나무숲 페이지)에도 올라오고, ‘, 되나보다싶었죠. 동아리 신청해보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도 왔고. 저희 쪽으로 페메(페이스북 메시지)가 와서, “여성주의 교지 모임이 생기다니 놀랍다, 축하드려요라고 해서 그 분들과 같이 유인물 같은 걸 뿌렸어요. 그래서 너무나 잘 마무리가 되었고, 201512월에 오프너 교지가 나왔죠.

활동 1. 창간호 발간

성임은(오프너): 창간호가 너무나도 예쁘게 잘 나왔어요. 미트쉐어 프로젝트 사업에서 100만원 정도를 받고 나머지는 뒤에 광고가 들어가는 형식이었죠. 광고대행사와 힘을 합쳐서 책이 예쁘게 잘 나왔어요. 다행히 1,000부를 찍었는데 일부러 남겨둔 50부만 제외하고 거의 다 나갔고,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좋아요 수가 확 올라가고, <독자 평가 수다회>를 열었는데 보통은 대부분 지인들 초대로 구성되지만 이 때는 잘 모르는 분들도 오셔서 잘 마무리되었어요. “2015년 흥했다라고, 평가에서도 잘 했다고 마무리되었죠.

활동 2. NO MEANS NO 캠페인

성임은(오프너): 2016년에는, 덕성여대 소모임 <노라>와 함께 <NO MEANS NO> 캠페인을 했어요. 이것도 미트쉐어의 지원을 받아서 대형 현수막을 뽑고 소형 현수막과 전단지를 학교 여기저기 붙였죠. “축제 때 너희 제발 성폭력 좀 안 일어나게 해라라고. 당시에는 총여도 없었기 때문에 아무도 관심이 없었고 성폭력이 일어나기나 하나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서 캠페인을 했는데 이것도 사람들이 많이 알아주더라고요. 하도 크게 붙여가지고. 밑에 광장에 나와서 술마시고 빰빰빰 노래 나오는데 현수막이 붙어 있으니까 (압박감이)...

활동 3. 강의평가에 성차별 평가 항목 추가

성임은(오프너): 학내 인권센터가 신설되면서, 그나마 인권센터가 생겼는데 (강의평가에) 이 정도 문항이 있어야 되는 게 아니냐, 해서 강의평가에 성차별 인권침해 항목을 추가하라고 요구했고 문항이 추가되었어요.

활동 4. 오픈세미나

성임은(오프너): 가장 최근에 한 건 오픈 세미나에요. 학내 여성주의가 너무 부족하고, 총여 후보자가 나왔는데 여총, 여학생총회, 말도 안 되는 네이밍으로 비하하는 단어가 쓰이고 있어서 <페미니즘의 도전>이라는 책으로 오픈 세미나를 열었죠.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고 총 20명 정도가 와서 정말 잘 됐다고 생각했어요. 포스트잇 액션을 하면서 페미니즘을 알게 되었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라는 내용으로 포스트잇을 적어서 이제 뭘 할까? 예를 들면 교수님이 성희롱 발언이나 인권침해 발언을 했을 때 정색하기. 페북에 김치녀 페이지의 말도 안 되는 글에 댓글 적기. 그런 식으로 개인적 차원에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2차 때는 단체로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하니까 오픈 세미나 계속 참여하기와 같은 의견이 나왔죠.

실패 경험

성임은(오프너): 한국여성민우회에서 대학생 페미니스트 이름으로 <물길>이라는 사업이 있는데, 물길 사업 일환으로 포스트잇 액션을 했어요. “교수님 그 발언 NO”, “어딜 훑어?” 이런 식으로 포스트잇 자체가 나와서 이걸 학내에 여기저기 붙였어요. 이게 왜 실패 경험이냐면, 그날 오후에 다 떼어졌거든요. 근데 목격자가 있었어요. 저희는 학교에서 떼었나 했는데, 지나가는 남학생들이 휙 떼고 갔다고 하더라고요. 실패 경험이라기보다 스스로 좀 좌절했고, 다른 분들은 좀 무서워하기도 했었어요. (우리가) 활동을 많이 하는데 이게 다 떼어지고,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생각하니까 무서워진 거죠.

성임은(오프너): 학내에서 페미니즘이 가시화되고 있었는데 열람실에서 몰카를 찍었다는 내용이 대숲에 올라왔어요. 그 다음 내용이 뭐였냐면, 여성분들 조심하세요 라는 대숲 글이 있었어요. 그래서 너무 화가 나서 이건 조심할 문제가 아니다, 해결되어야 할 문제인데 뭘 조심하냐 몰카를?” 이라는 글을 올렸고, 같이 <물길>의 포스트잇 액션이 떼어진 걸 공유하면서 아직도 학내에는 너무나도 갈 길이 멀었구나, 했죠. 저희가 흥했다고 평가했지만 이게 너무나 일부고 소수의 경험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학내에서 학과 성폭력 사건이 터졌는데 하필 또 저희 학과더라고요. 피해자가 명예훼손을 당하는 사건이 생기고. 근데 여성주의 교지를 하다 보니까 당연히 저희 쪽으로 이야기가 들어올 수밖에 없는데 학교 내에서 저희가 해결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저희가 학교에 인권센터에 이것저것 요구를 해야 되는데 학교에서는 이 교수가 우리 학교 교수이니까 보호할 수밖에 없다고 했고, 학생회는 선거 때문에 바빠서 다 외면하고. 그래서 스스로가 좌절하고, 학생회 여기저기에 연락하고, 피해자는 저랑 아는 사이였는데 명예훼손 당했다고 하고. 교수님은 직위해제 상태. 문제가 일어나면 그냥 잠깐 쉬는 거죠. 아예 사퇴나 이런 게 아니라 잠깐 쉬는 징계를 받았고 답이 없다, 라는 식으로. 결국 마지막에는 대자보를 쓸 수밖에 없었어요. 학과에서는 대자보를 붙이자마자 학과 차원에서 대응했고, 그 대응도 교수님에게 사과문을 받겠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런 거였고 저 스스로는 이런걸 어떻게 해야 하나, 학과 내부에도 성폭력 내규 같은 게 없어서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을 했었어요. 대학은 여자 얼굴을 하지 않았다 라는 대자보.

성임은(오프너): 가장 큰 실패는, 교지를 못 냈어요. 창간호를 이렇게 예쁘게 내고 페미 열풍이 부는 이 시기에 광고대행사에서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했어요. 김영란법 때문에 파기했는데, 잘 나가는 동문이 회사에 높은 직위에 오르면 저희가 광고를 부탁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동문에게 요구하는 것 자체가 김영란법에 걸린다는 어이없는 이유를 대는 거에요. 다른 대행사에 물어보니 아니다, 무슨 얘기냐고 하더라고요. 원래 12월에 내기로 했는데 다 취소가 되었어요. 너무 좌절한 상태에서 지금은 3월에 내기로 예정되어 있다.

가장 힘이 났을 때

성임은(오프너): 가장 힘을 내었을 때는 페메(페이스북 메시지)로 사람들이 찾을 때. 응원한다, 교지 발간 안되냐, 이럴 때요. 우리도 안타깝지만, 계속 관심 가져주고 우리 교지가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감사하죠). 그리고 돈을 주시기도 해요. 오픈 세미나를 하던 날, (봉투를 받았는데) 전 러브레터인줄 알고 받았는데 돈이 들어 있더라고요. 구독료라 생각해 달라면서. 학생이 돈이 얼마나 있다고 돈을 주시지? 그리고 민중총궐기 때 여성대회에 참가했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오카리나를 불고, 누가 난입하니까 꺼져! 라고 하고. 여성들끼리 율동도 하고 너무 즐거웠어요. 그래서 대안적인 문화를 만들어가는 게 너무 중요하다 라고 생각했고, 집회가 너무나 재밌었어요. 사실 제가 편집장이다 보니까 제일 책임을 많이 갖고, 저 스스로도 제가 누굴 이끌어준다는 생각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저 혼자 할 때가 많았어요. 그래서 친구들이 제발 좀 나눠라 라고 얘기하는 편이었죠. 그래도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어 무섭지 않아서 좋았어요.

 

스탭(참석자): 교지에 포함되는 텍스트 중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게 뭔가요?

성임은(오프너): 보통 학내 사안을 1차적으로 다뤄요. 두 번째는 각자가 관심 있는 걸 넣어요. 원래 2호에 넣으려고 했던 건, 인권센터의 현재 규정안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분석하고, 학생회 회의록을 들춰보고 대표자들의 빻은 발언을 찾아봅니다. 실제로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빻은 발언을 분석해야겠다 했는데 선거를 앞두고 실패했죠. 그리고 여성 대표자가 학생회에서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든가에 대한 걸 꾸리고, 가족 이야기도 하기로 했어요. 너무나 다양한 가족이 있는데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때문에 스스로가 희생해야 하는 부분들을 이야기해보자, 대중문화 비평 이런 것도 하고. 그때 그때마다 논의를 하면서... 학내 사안이 꼭 들어가는 부분이 있어요. 아무래도 성폭력 문제 같은 걸 얘기해야겠다는 의무감이 있었고요.

 

감나무(참석자): 포스트잇 액션을 했을 때 다른 분들이 (포스트잇) 떼어진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는 얘기에서 생각이 났는데, 저도 깃발 들고 페미존에 참여하면서 여성 게이머의 정체성을 가지고 나갔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서브컬쳐고, 오버워치라는 거대 게임에 관련된 거라서 그 이후로 남초 커뮤니티 오유 같은 곳에서 공격 많이 받았어요. 지금은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는데 주변 사람들이 걱정했어요. 너 이번에 나가면 성추행을 당하거나 할 거라고불특정다수의 다른 분들도 걱정을 해 주세요. 저는 일단 학교를 졸업했고 지금 당장은 소속된 곳이 없어서 공격을 받아도 딱히 직장 없으니까 짤릴 일도 없잖아요. 그것 때문에 두려울 게 없는 상태이긴 한데,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나에게 공격성을 갖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 두려움을(가지면 힘들 것 같아요) 편집장이시니까 제일 알려진 사람이고 대표인데, 학교에서 공격을 받거나 그런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실 것 같은데 어떻게 대응하시나요?

성임은(오프너): 그런 남성분들이 왜 찌질하냐고 느끼냐면, 단 한번도 독대를 신청하거나 너 왜 그런 활동해라고 말한 적이 없어요. 오히려 제 앞에서 필터링을 하죠. 제 앞에서 말을 고분고분하게, 어 그랬어요, 제가 해드려야죠, 이러고 뒤에 가서 말이 바뀌고. 문제제기를 하면 또 말이 바뀌고. 그런 식으로 하는 분들이 많아서 처음에는 혐오감이 들었죠. 이 사람들 왜 이러지? 거기에 너무 지쳐서 어떻게 할 줄 몰랐다가, 아 그럼 학교에서 더 깝쳐야겠다. 더 날뛰고, 그 사람들이 많은 공간에 가서 더 많이 발언하고. 그렇게 됐어요. 교지라고 하지만 학생회 사업을 많이 하는 편이라서 한마디로 지X을 많이 해야겠다 싶어서 많이 하고 있어요. 제가 학번이 12학번인데 내년 신입생이 17학번이에요. 이런 나이 권력이 있기도 하기 때문에 저보다 어린 분들은 저에게 함부로 못 구는걸 좀 이용하고 있기도 하고요. 물론 존대를 하긴 하지만, 이런 것 자체가 그런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거죠. 그래서 이런 걸 알게 모르게 이용하기도 해요.

 

홍시(길동무): 모임에서 여성주의 공부를 따로 하나요?

성임은(오프너): 같이 해요. 1년 내내 여성주의 공부를 같이 하는데, 8명이 있다 보니 수습 친구들이 들어오고 4월부터 했을 때는 잘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오히려 소규모로 하면 이야기가 잘 나오고 풍부했던 것 같은데, 8명이라... 한쪽은 여성주의 공부를 많이 했고 한쪽은 여성주의 공부를 많이 못 했다 보니 제가 끌어올 수밖에 없었어요. 제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파할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이 친구들은 생업과 알바를 병행하다 보니 제가 이게 너무 중요해라고 강요할 수도 없고. 그리고 이걸 1학기 때부터 시작했는데, 2학기 때 이걸 이야기하다 보면 서로가 너무 다른 점이 있어요. 한쪽은 너무 논리적으로 얘기하고 한쪽은 개인의 취향이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해서 아 공부가 더 필요하구나 싶었죠. 그래서 겨울방학 때 계속해 볼 생각이에요. 주로 발제를 하고, 이해 못했던 점을 정리해서 다같이 이야기해보고요.

 

스탭(참석자): 공부 중에 확장되는 게 없는지 궁금한데, 관심을 가져서 알아가다 보니 페미니즘 안에 여성주의만 있는 게 아니라 페미니즘 안에 여러가지가 포함되어 있는데, 페미니즘 공부를 하면서 여성들 문제를 알게 되면서 환경 문제나 남성 문제도 알아가는 식으로 확장되진 않나요?

성임은(오프너): 자연스럽게 되죠. 노인이나 장애인이나 성소수자나. 저 스스로도 한계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여성적으로 발화하고 생각하다 보며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게 사실인데 이 부분까지는 아직 많이 공부를 못 했어요. 저 말고 다른 친구들은 스스로 공부하는 편이 아니어서. 섹슈얼리티 모순이라는 게 많이 발생하죠. 장애인 남성과 비장애인 여성과의 갈등이라든가. 그래서 공부하려고 하는데 2학기 때 사업이 많아서 공부를 많이 못 했어요.

스탭(참석자): 페미니즘을 처음 접할 때는 여성인권신장운동이라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이걸 계속 하다 보니까 페미니즘에서 여성적 사고와 남성적 사고에 많이 집중을 해요. 페미니즘을 처음 접하면서 여성들에게 많이 공감하게 되었고 대한민국에서 소수자 위치에서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공감을 했는데, 공부를 하면서 여성과 남성 사이의 성, 남성적 사고로 인해 야기된 환경문제 등으로 확장된다는 걸 알고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홍시(길동무): 여성주의와 페미니즘의 용어 정리가 필요할 것 같아요. 여성주의가 단순히 여성인권을 신장시키는 게 아니라, 왜 그렇다면 왜 인권 속에 여성의 자리가 없는가 하는 걸 되돌아보는 게 여성주의라는 학문이에요. 그걸 학문으로 봐야지, 여성주의가 여성의 인권만을 위한 것이다 라고 말하면 곡해가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감나무(참석자): 여성인권에 대한 말이 나와서 말인데, 민우회에서 <다시 만난 세계> 강의를 들었어요. 김희경 선생님 강의를 들었죠. 그 강의를 적어놓은 부분이 있는데,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보통 여성의 지위 향상이라고 많이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여성의 지위 향상이라고 하면, 어쨌든 지위 자체는 항상 존재해요. 예를 들면 김밥천국에서 누가 항상 김밥을 말고 있느냐, 라는 것이죠. 인권 피라미드가 있다고 치면 낮은 쪽에 있는 게 김밥천국에서 김밥을 말고 있는 아주머니인 건데, 그런 지위라는 건 언제나 존재하는데, 여성의 지위 향상이라고 했을 때 여성들이 동일한 위치로 (일괄적으로) 구겨넣어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부장제이고, 김밥천국 아주머니가 위로 올라가면 그 자리를 누가 채울 것이냐? 하는 문제죠. 이주노동자 여성이 될 수도 있을 거이고, 지위는 여전히 존재해요. 지금은 전체적인 판이 기울어져 있고요. 그래서 그 판 자체를 바로 세우고 게임의 룰 자체를 바로 세우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그 분이 좋아하는 말이, “페미니스트가 겨우 남성과 동등해지기 위해 투쟁한다?” 라는 말이 있다더라고요. 저도 매우 좋아해요. 좀 더 보편적인 거랑, 게임의 룰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게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듣고 내가 이렇게 대단한 걸 공부하고 있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3. <길동무 발표> (홍시 of 길동무)

홍시(길동무): 소모임 <길동무> 지기입니다. 오늘 대표로 나오게 되었어요. 저희는 은평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모임. 모태가 있다.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라고 해서, 여성주의 생협운동으로 시작했던 협동조합이에요. 살림의료사협에서 매년 여성주의 학교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처음 만들어질 때도 여성주의 의료사협으로 시작했죠. 지금은 이름이 바뀐 건데, 그곳의 핵심 키워드는 우리의 SPIRIT은 페미니즘이다라는 것. 20103월부터 201612월까지 활동 중이고요. 이번 12월에 8기가 열릴 예정이에요. 매 기수마다 20명 정도씩 나오는 지역 페미니스트 생산지랍니다.

모임 특성

홍시(길동무): 길동무는 작년, 여성주의학교 7기 들은 분들이 주도적으로 모여서, 우리 이대로 끝내긴 너무 아쉽다. 이 공부 더 이어가자. 라고 해서 자발적으로 작년 1월에 길동무라는 이름을 걸고 소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여성주의 학교 수업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에 그 수업을 듣고 나서 더 목이 말랐죠. 목 마른 자가 우물을 찾듯이 열심히 사람들을 모아서 소모임을 만들었어요. 정기모임이 매월 1. 기본적으로 페미니즘 책읽기를 해요. 같은 책을 읽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해요. 단체톡방이 있어서 매일 모이고요. 온갖 일상사가 다 페미니즘과 엮이죠. 그러다 미트쉐어와 만났어요. 이런 게 있다는 걸 알고 좀 더 모임이 확장되었죠. 전에는 우리끼리만 모였다면 그 이후엔 미트쉐어를 통해서 좀 더 뭘 해볼까? 하게 되었어요.

활동 1. 책읽기 모임

홍시(길동무): 처음엔 책읽기 모임으로 시작해서. 지원금으로 책을 샀어요. 우리가 페미니즘 책을 사고, 읽고, 그 책을 모아서 일단 저희 모태가 살림의료사협이라 거기 책꽂이 한 켠에 페미니즘 서고를 만들자고 한 거죠. 이미 페미니즘 책이 많이 있긴 한데 우리도 우리 이름으로 만들자고 했어요. 미트쉐어를 하면 후기를 작성하게 되는데, 우리도 서평을 작성하고 좀 더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기회가 되었죠.

활동 2. <여성노동자 투쟁역사> 강좌

홍시(길동무): 책 읽기 모임을 했다가 너무 아쉬워서 더 열어볼까? 사람들 만나볼까? 해서 강좌를 개설하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내용으로 강좌를 열 수 있을까? 해서 각자 자신만의 영역에서 열심히 공부하신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이분들의 강의를 듣는 걸로 시자해보자 해서 자체적으로 강사를 발굴하고 강좌를 기획했죠.

핵심 키워드는 함께”, “공부”. 다들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분들이 모인 것 같아요. 그동안 활동한 자료들을 간단히 보면, 첫 번째 강좌는 <여성노동자 투쟁역사>. (강연자는) 송송님이라고, 임혜숙님이라고 하는데 현재 평등사회노동교육원에서 노동자교육을 맡고 계신 이 분야 전문가죠. 민주노총에서 오래 활동하셨고. 고공농성운동이 일제시대부터 있었다는 사실을 아셨나요? 심지어 (주동자가) 여성이었답니다. 목숨 걸고, 사실 처음엔 죽으려고 올라갔었는데 그냥 죽으면 다 묻히니까 죽기 전에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투쟁해보겠다 하고 올라갔었던 역사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쭉 훑었습니다. 21세기 비정규직까지. 여성들이 노동운동에서 주체가 되어서 열심히 투쟁한 사실들이 있는데 지금 노동운동의 역사를 우리가 아는 것만 좀 떠올려봐도 머리에 띠 두르고 작업복 입은 남자들이 떠오르죠. 물론 87항쟁 이후로 노동운동판 자체가 중공업 중심의 남성노동자들이 많이 있는 거대한 노동조합 중심으로 하는 방식으로 흐름이 바뀌긴 했는데, 그 이전에 6-70년대에는 여공들이 주축이 된 노조활동이 훨씬 더 활발했다고 해요. 여성들이 더 오랫동안 열심히 싸운 역사가 있는데 그런 역사가 많이 묻혀 있는 거죠. 그런 것들에 대해 들을 수 있어서 소중했어요. 끝나고 나서 감동적이었다, 몰랐던 걸 많이 알았다고 한 분들도 많았고요. 20명 좀 안 되게, 물론 길동무 다 포함해서 그렇게 왔어요. 길동무는 10명 정도 됩니다.

활동 3. <페미니즘 미술, 너는 누구?>

홍시(길동무): 두 번째는 <페미니즘 미술, 너는 누구?> 라는 행사였어요. 미술을 전공하고 페미니즘 미술 관련해서 교육하는 화사님이, 일다에서도 활동하시는 분인데, 자기 영역을 갖고 저희와 같이 강의를 진행했어요. 미술계도 보면 너무 남성중심적이에요. 이 포스터에 있는 그림이 게릴라걸스라는 미술집단 퍼포먼스 사진인데, 게릴라걸스가 탄생한 근원을 따져 보면 이들이 너무 분노했던 거에요. 미국의 전시 목록을 봤더니 여성이 한 명도 없었거든요. 게다가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을 봤을 때 여성은 80% 이상이 누드. 그럼 여성은 벗어야지만 들어갈 수 있는가? 이런 것들에 대해 페미니즘 이슈를 갖고서 재미있는 활동을 했어요. 그리고 국내에서도 다양한 페미니즘 미술 활동들이 있었고, 그런 이야기들을 미술사와 관련해서 쭉 들어보는 시간이었어요. 이 때도 20명 좀 안 되게 와서 들었죠.

첫 번째 행사는 살림의료사협의 다짐이라는 건강센터를 대여해서 진행했어요. 운동기구도 있는데, 운동기구만 갖고 운동하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건강해질 수 있다는 모토로 운영되고 있어요. 외모에 대한 품평도 하지 않고 운영되는 건강센터로도 유명하죠. 두 번째 강좌에는 지역주민분들도 오시고 살림조합원들도 오시고.

운영 방침

홍시(길동무): 길동무는 여성주의학교를 수료한 사람들에 한해서 모임원을 받고 있어요. 공부를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들의 인식의 차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좀 더 이야기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 약간의 문턱을 두었죠. 그리고 이름에서 느껴지겠지만 연령대가 좀 있어요. 30대에서 50대까지. 저는 일단 페북이나 트위터 등의 온라인 활동을 전혀 안 해요. 그래서 온라인 상황을 잘 모르는데, 물론 다른 분들은 열심히 하시기도 하고요. 어쨌든 그런 이유로 오늘 컨퍼런스에 와 보고 싶었어요. 시류는 어떤가, 살아있는 목소리는 어떤가 하고. 은평구 지역 주민들과 주로 모이다가 바깥 이야기도 듣고 싶어서 왔죠. 저희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공부를 할 것 같아요. 공부를 하면서 각자의 삶에서, 각자의 영역에서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아가려는 게 저희 목표에요. 그럴 때 이 길동무들이, 서로 다른 길이더라도 같이 길을 걷고 있다는 지지가 되는 동무들로서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해요.

 

성임은(진행자, 오프너): 길동무에도 내규가 있나요?

홍시(길동무): 내규는 따로 없고, 살림의료사협 자체가 별칭을 많이 쓰는 문화가 있어요. 그곳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길동무로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닉네임을 쓰는 문화가 이미 있었죠. 그리고 서로 존대하는 것도 이미 있던 문화였고. 길동무는 어찌 보며 수월하게 만들어져서 활동할 수 있었어요. 이미 문화가 다 깔려 있었기 때문에.

혜원(페미레인저): 저도 학교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학교가 서대문구에 있어서 마을공동체 조성을 위한 노력을 많이 해요. 은평구 내에서 길동무라는 존재가 유명한가요?

홍시(길동무): 전혀 아니에요. 저희는 외부로 활동을 한 게 미트쉐어 하면서 이런 강좌를 한 게 처음이었어요. 11월에 두 번 했고요. 그 전까진 우리들끼리의 닫힌 소모임이었고, 대신 살림은 은평구에서 굉장히 유명했어요. “살림2011-2012년쯤에 열었을 거에요. 그 때 총회를 열어서 협동조합을 세웠고 의원도 개업했고. 그렇게 해서 거의 5-6년 정도 은평구 지역 내에서 계속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살림 자체는 굉장히 인지도가 있어요. 특히 마을공동체라든지 협동조합 중에서는 유명한 편이죠.

 

 

 

4. <Data.f 발표> (한주연 of Data.f)

한주연(Data.f): 다들 대단하시네요. 폐허 같은 곳에서 공부하고 활동하는 (이야기를 듣는 게) 많이 힘이 되었어요. 저희도 같이 공부하는 모임입니다. 페미니스트 북클럽&살롱이라는 이름은, 책만 읽는 게 아니라 다양한 자료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요. 미트쉐어 모임 소개에도 썼지만 다양한 분야에서의 여성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죠). 특히 이공학, 정치, 그리고 (세션의) 마지막은 사실 분야라기보다 동아시아의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정보가 너무 필요하다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그런 내용을 중심으로 살롱을 진행했어요. 저 말고 다른 동료분이 있는데 그분이 트위터에서 이야기하다가 제가 뭘 올리고 그 책 읽어봤냐? 읽어보고 싶다 이렇게만 하고 넘어갔던 것을, 제가 다니던 회사 그만두면서 당장 시작하자 (라고 해서 시작했어요). 그렇게 시작했다가 직장에서 사표가 수리되기도 전에 회의를 시작해서 커리큘럼을 짜고 책을 고르고 일사천리로 정리가 되었죠. 트위터 계정을 만들고, 사람들이 솔직히 신청 안 할 줄 알았는데 신청을 많이 해주셨어요. 교육 쪽에서 전직해서 IT 쪽에서 겪은 문제들, 현업과 관련해서 공학 쪽에서 일한 분들이 많이 오셨고. 그 외에도 연구자 분들이 많이 왔어요. 좋은 분들이 모여서 좋았고, 저희도 소규모로 진행했어요. 망원동 만일에서 매주 일요일 15번 모였어요. 저희도 이게 생업이나 학업이 같이 있다 보니까 이게 정말 이어가기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일요일 오후로 잡아서 어쨌든 끌어갈 수 있는 힘이 필요했고, 그래서 커리큘럼을 열심히 짰어요. 그리고 정해진 인원을 계속 같이 간다 라는 게 있었죠. 매 세션마다 참여자를 받되 그 참여자들이 주축이 되어서 가야 한다는 게 있었어요. 처음에 이공학에서의 이슈로 가기 전에 “여는 세션”이라고 해서 한번 (시범적으로) 시작했는데, <여성혐오가 어쨌다고?>를 읽으면서 정리를 했어요. 기획자들이 학습자료도 만들었는데, 거기에 나오는 혐오의 연대기 같은 걸 정리하면서 같이 이야기하는 기반을 만들었죠.


활동 1. 이공학 세션

한주연(Data.f): 저도 이공학 쪽에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건, 지금 코딩 배우는 사람도 많고 테크 쪽, IT 쪽에 대한 지식 없이는 사실은 (살기 힘들 정도로) 그런 쪽으로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제가 주변에서 봤을 때 느끼기론 남성인 친구들은 잘 도전해서 한번 배워보고 하는데 여성인 친구들은 좀 덜하다는 걸 느끼게 됐고요. 실리콘밸리에서 터지는 문제들, 성적 문제들. 차별이나 이런걸 보면서 대체 한국 상황은 어떨까. 미국은 (저렇게) 터지기라도 해서 알게 되는데 역시 들어보니까 엉망이었고, 그러다가 5월 쯤에 코드라는 다큐를 보게 되었어요. 이번에 여성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는데 친구들이랑 보고 참 좋았죠. 가장 혁신적이라는 실리콘밸리가 얼마나 백인 남성 위주로 굴러가는지 보고 이걸 하게 되는 발판이 되었어요. 근데 한국은 다르니까 한국은 어떤지 상황도 알고 싶었고, 여성 과학자들에 대해 우리가 준비를 했었죠. 예를 들면 이런 걸 (웹페이지를) 만들어서 연대기별로 자료를 찾아서 정리했어요. 이런걸 하면서 저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리 퀴리 다음에 또 다른 여성 과학자들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런걸 하면서 저도 많이 공부가 됐고, 마지막으로 <엔지니어의 한국사 이런걸 읽으면서 한국의 엔지니어들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런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요. 이 세션은 협업 노동자들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되었어요.

활동 2. 정치 세션

두 번째는 정치 세션을 진행했는데, 그 때는 우리나라 상황과 함께 외국의 페미니스트 정당이나 운동에 대해서도 공부를 하게 됐어요. 그래서 이런 자료를 만들어서 보고. (ppt로 제시)


활동 3. 동아시아 세션

한주연(Data.f): 동아시아 세션에서는, 저도 페미니즘을 접하고 폭발적으로 공부하면서 사실 굉장히 많이 접하게 되는 게 서구 백인 페미니즘이고, 블랙 페미니즘도 많이 접했는데 아시아에 누가 있는지 너무나 무지한 상황이었어요. 사실 서구 페미니즘을 접할 때 약간 불일치하는 지점들이 있어요. 도대체 내 자리는 끝까지 찾아지지가 않는 거에요. 그래서 그걸 찾고 싶었고, 분명히 많은데 모르고 있으니까 그걸 공부해야겠다는 갈급함이 있었고. 그래서 전 세션들과는 다르게 좀 더 공부 위주로 진행했고, 참여자들에게 발제를 적극적으로 요청해서 위안부 문제부터 시작해 대만 쪽 여성문제까지 공부를 했는데, 시작하기 전에 걱정을 많이 했어요. 참여자 분들에게 부담을 주고 우울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사실 제일 즐거웠던 모임이었어요. 유쾌하고 강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특히 대만은 가장 인상 깊었던 나라 중의 하나인데, 우리나라는 민주화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여성 운동은 (함께 가는) 역사라고 해도 항상 따로 배우잖아요. 그런데 대만은 달라요. 페미니스트들이 여성 운동에서 항상 같이 잡혀가고…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분이 와서 알려줬는데 페미니스트 운동가의 탄생일이 국경일이래요. 그래서 그날은 여성들이 카톡 같은 걸로 인사를 주고받는다는 거에요. 그런 걸 보면서 되게 즐거웠어요.

한주연(Data.f): 저희는 아주 숨가쁘게 달려왔어요. (8워부터 11월까지)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래서 동아시아 때는 좀 빠지기도 했어요. 저에게 갈급했던 질문들을 공유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하는 자리였고, 다른 분들도 이런 게 필요했었어요. 그리고 같이 하다 보니까 확실히 인식이 넓어지는 지평이 되었죠.


미트쉐어 소감

한주연(Data.f): 미트쉐어를 하게 된 건, 여성 과학자들 조사하면서 너무 아까웠어요. 그래서 트위터에 썼더니 반응이 좋아서 실제로 (웹사이트를) 구현할 수 있는 친구와 같이 해보자 해서 여성 인물들의 기록을 남기는 (일을 한 거죠). 과학자로 시작해서 앞으로 많이 해 보려고 해요. 예시를 보여드리면, 두 가지 버전이 있어요. 모바일용으로 만들기도 했고요. 책이랑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모았어요. 카드 형식으로 만들기도 하고요. 업적을 빼앗긴 사람도 있고, 부모나 남편 때문에 문제가 된 사람도 있는데, 그런 걸 범례화해서 시각화하려고 했어요. 제가 좋았던 여성 과학자 한 명을 소개하자면 이렌 퀴리에요. 마리 퀴리의 딸이죠. 그런데 그것과 상관없이, 자기 어머니나 아버지의 영향과 상관없이 멋지게 살았던 사람이에요. 이렌 퀴리는 프랑스 역사상 최초의 여성 장관이었고요. (그녀가 남긴) “나는 죽기가 두렵지 않아. 너무나 재미있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이런 말도 굉장히 좋았어요. 여성들이 그 때도 힘들었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했다는 걸 많이 배웠어요. 미트쉐어를 통해서는 이런 프로젝트들을 진행했죠. 원래는 “여성이기 때문에” 교육에서 배제되기도 하고 남편에 가려지기도 하는 공통적인 요소를 범례화해서 정리하려고 했지만 지금은 중단된 상태에요.

한주연(Data.f): 15주차를 끝내고 며칠 전에 쫑파티를 했어요. 작은 책자를 만들어서, 지금까지 얘기한 내용들을 정리해서 책으로 만들었죠. 사람들 에세이를 받았는데, (읽어보고) 많이 놀랐어요. 사람들이 어떻게 느꼈는지 알게 된 계기였죠.


진행 소감

한주연(Data.f): 낯선 사람 만나는 걸 안 좋아하는데 이렇게 모임을 열고 트위터를 통해 사람을 받고 하는 게 용기가 필요했어요. 근데 좋은 동료들을 많이 만났어요. 저에게는 공부하는 모임이 이런 (미트쉐어 컨퍼런스 같은) 느낌이었죠. 내가 가지고 있던 질문과 비슷한 최초의 공동질문을 가지고 모여서 돌아갈 때에는 조금 더 확장된, 뭔가를 들고 가는? 그런 과정이 저의 삶을 지탱해줬어요. 강남역 사건도 있고 일련의 사건들을 보며 많이 힘들었는데, 최근에도 많은 일이 일어났는데 이 모임을 시작하고 나서 뭔가 덜 소진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에 시간이 (짧아졌고) 금방 괜찮아졌어요. 그건 내가 지금 이 모임을 하고 있다는 것, 내가 관심 있는, 내가 페미니즘과 관련해서 뭔가를 계속 하고 있고, 내 동료들이 있고, 이런 게 저에게 다른 뭔가를 준 것 같아요. 지금 이게 시즌 1이 될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저도 생업의 문제도 있고 해서.. 그래도 아주 값졌던 경험이에요. 실제로 뭔가 결과물을 내신 분들도 있고 한데 저희는 어떻게 결과물이 나온 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마친지 얼마 안 됐으니까요.

 

혜원(페미레인저): 북살롱 트위터를 팔로우 하면서 거기 올라오는 글을 많이 보는데, 글을 볼 때마다 너무 놀란 게 어떻게 이렇게 (모임에서) 나눴던 얘기들을 다 공유하고 진행하는가 하는 거였어요. 저희도 처음에 페이스북 계정, 트위터 계정을 만들 때 담당자를 만들면서 (지켜보는) 눈 하며 공격받을 가능성도 있고 (해서 힘들었는데.) 꾸준히 하는 게 인상 깊었어요. 그 부지런함은 어디서 온 건가요?

한주연(Data.f): 저희가 둘이서 하는데 한 분은 생업이 있고 저도 알바 같은 걸 하고 다른 공부도 하고 그래서 사실 정말 지쳐 있어요. 좀 쉬고 싶은데, 이게 너무 아까웠어요. 이게 그냥 그 자리에서 이야기가 소진되는 게 너무 아깝고, 너무 좋은 얘기들이 나왔을 때 그냥 그 자리에서 한 분은 속기를 하기도 돌아가면서 속기를 하지만 당시에 모아서 바로 바로 트위터에 올리기도 하고, 정리해서 올릴 필요가 있을 때에는 적어놨다가 올리고요. 처음엔 모임 끝나자마자 올리던 게 계속 조금씩 늦어지긴 했지만... 저는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가 너무 좋았고 너무나 공유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부들이 공유해주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글타래를 계속 읽는다는 게 어찌 보면 귀찮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한 얘기잖아요. 내가 같이 있었던 게 아닌데. 어찌 보면 기록용으로 썼고… 현재 저는 핀치라는 미디어에 연재를 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쓴 게 엔지니어의 한국사에 대한 것인데요. 그걸 정리하는 게 정말 고강도 노동이에요. 녹취를 푸는 것부터. 그런데 동아시아 세션 때도 얘기했지만 다음 세대의 여성들도 분명히 어떤 노트를 필요로 할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의 노트. 2016년의 20대, 30대 여성들이 도대체 무슨 얘기를 했을까. 아주 작은 말이라도. 왜냐면 제가 작은 말에서 감명을 받고 좋았기 때문에.. 그래서 트위터에도 계속 올리려고 하는 힘이 돼요.

 

이희주(페미레인저): 페미니스트 북클럽&살롱은 텍스트를 정하고 신청자를 받아서 진행하는 형태인데 직접 모임을 진행하는 두 분이 미리 텍스트를 읽고 같이 얘기를 나누면 좋겠다는 식으로 하는 건가요? 아니면 두 분이 읽고 싶은걸 골라서 그 장소에서 처음 얘기 나누는 건가요?

한주연(Data.f): 일단 읽어오는 게 목적이에요. 그 텍스트로 대화를 만들어내는 게 원칙인데 못 읽어오는 분들도 당연히 있어요. 그래서 기획자는 당연히 읽어야 한다. 모임이 가기 위해서는 끌고 가야 한다. 그 사람이 리드하고 앞에 서고 이런 게 아니라 그 내용을 어쨌든 숙지하고 있는 사람, 이야기를 끌어내는 사람. 그걸 숙지하지 않아도 필요한 이야기들이 나오기도 하는데, 처음 세션에 힘들었던 게, 자료를 숙지하지 않고 오면 이야기가 새요. 물론 새도 되는데, 컴팩트한 논의는 할 수 없으니까요.

이희주(페미레인저): 도서 선정 과정에서도 읽어본 책들만 선정하는지?

한주연(Data.f): 사이트에 커리큘럼을 공유했어요. 책만 읽은 건 아니고 자체 자료도 있어요. 자체 자료는 ppt를 만들어서 그때 공유를 하죠. 이건 훨씬 나은데 정치 페미니즘 경우는 다른 분들이 발제 자료를 가져오기도 하고 자기가 가져온 자료를 가져와서 이야기 해준 분도 있어서 확실히 이슈나 주제를 정해놓고 하니까 이거에 관심 있는 분들이 오면 괜찮은 논의가 되었어요. 뒤에는 책도 있고 발제자료를.. 메일로..(보냈죠)

성임은(진행자, 오프너): 자료는 직접 만드는지?

한주연(Data.f): 직접 만들 때가 많아요. 있어도, 어쨌든 짜깁기해서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만들었죠.

혜원(페미레인저): 북살롱은 진행자 2명이 있는 모임이라서 스터디 모임과는 형태가 다르겠지만 페미레인저도 항상 이번엔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 우리는 아는 책이 없고 자료가 부족하다는 답답함이 많았어요. 길동무도 강좌를 여시는 걸 보니까 모임 내부에서 소스가 나온다는 게 멋있고요. 전문분야에 계신 분들이 많은 모임이니까 그게 가능하겠구나. 그런 자료에 대한 열망이 있죠.

한주연(Data.f): 자료를 공유하면 좋을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공유하면 좋을 지… 이런걸 (ppt를) 만들어요. 열심히 만들기도 하는데, 이걸 책으로 정리하기도 하고. 그나마 핀치에 연재를 하니까 억지로라도 정리를 해두는 게 중요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성임은(진행자, 오프너): 거의 일주일마다 매번 만들었는지?

한주연(Data.f): 그럴 때도 있었죠. 어떨 땐 영화를 보기도 해서 괜찮기도 하고. 그래서 뒤에는 발제로 바뀌었어요. 따로 발제를 해오는 게 좋았어요.

홍시(길동무): 북살롱은 몇 명 정도가 참가하나요? 그리고 어떤 분들이?

한주연(Data.f): 일단 다양해요. 참가신청을 트위터에서 랜덤으로 받고요. 계정을 만들고 초반에 뿌린 거라서 처음엔 10명 정도가 신청했어요. 나중엔 문의가 많이 들어오긴 했는데 어차피 많아진다고 논의가 좋아지진 않기 때문에 더 받진 않았어요. 대부분 2030 페미니스트였고, 현업에서 말할 곳이 필요한데 말할 곳이 없는 분들이 많이 오셨고요. 연구자들도 많이 오셨죠. 예를 들면 사회학과에서 노동 관련해서 연구하다가 여성 노동으로 넘어갔다거나 이런 분들. 정치 세션 같은 경우는 여성 정책 공부하는 분들도 있었고. 녹색당 비례대표로 나간 분도 한번 오셨고요.

홍시(길동무): 다들 컨텐츠가 좋아서 놀랐어요. 교지도, 재미있고 편집도 훌륭해요. 페미레인저는 귀여우시고. 각자 색깔도 있고. 페미북살롱도, 거의 책으로 낼 수도 있을 법한 좋은 자료잖아요. 최근에 길동무에서 산 책 중에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가 인상적이었는데 저에겐 그 책이 충격적이었어요. 저는 살림조합 초기부터 한 멤버였고 그 전에도 여성단체가 존재했고 여성운동을 한 분도 많았는데, 제가 생각할 때 페미니즘 이슈가 확 불면서 여성운동이 가시화된 건 2000년대 초반부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계보 책을 보니까 2016년에 나왔는데 우리에게 계보가 없다고 시작하는 거에요. 그리고 듣기로는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즘 관련된 활동하는 분들이 독립적이고 자발적인 활동을 많이 하는데 그게 기존의 여성운동, 페미니즘 진영과 연결이 잘 되지 않는 듯한 느낌도 받았어요. 아까 소속감이 없다는 이야기도 나왔는데, 일부러 소속을 안 갖는 분도 있다고 생각하고, 기존의 어떤 단체나 진영에서 활동하지 않고 따로 온라인이나 독립적으로 활동을 선택한 계기가 있나요?

한주연(Data.f): 계기라는 것이, 2030 페미니스트들에게 인터넷으로 간 계기는 없어요. 페미니스트가 된 계기는 있겠지만. 인터넷은 자연스럽게 쓰는 도구이자 전장일 뿐이죠. 정치 세션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저는 당내에 들어가서 아래에서부터 누굴 조직해서 의제를 위로 올리고 정책을 가시화하고 이런 감각이라는 게 없어요. 그걸 못 한다고 제가 스스로 그게 싫지도 않고요. 저는 이렇게 작은 모임들이 꾸려지는 것도 정치적 활동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치적 활동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것에 이름 붙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해요. 이게 기존의 여성운동과 다르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정말 말 그대로 자아 편한 도구이자 가장 잘 맞는, 텀블벅에 돈이 모이고, 온라인에서 시작해서 오프라인에서 만나고. 이게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왜냐면 다 온라인에 있으니까.

혜원: 오늘 아침에도 트위터에서 뭘 봤는데, 2030 페미니스트들이 트위터를 하다가.. 트위터에서는 발언에 무게가 실리지 않고 동등한 무게가 있는데 이런 곳에서 여성 인권을 긍정하고 여성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고양감을 준다는 거에요. 뭔가 가져야만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 많고, 뭔가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으면 말할 수 없는 곳이 많은데 나는 발언권이 없는 젊은 여성이고. 그런데 SNS에서는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독립적 활동에 힘을 줘요.

한주연(Data.f): 일상적으로 공부가 많이 돼요. 계속 올라오니까. 이게 책 한 권을 읽는 흐름과는 또 다르게, 간헐적으로 계속 보는 것이 주는 학습의 쾌감도 엄청나죠.

성임은(진행자, 오프너): 강연 들을 때마다 들은 게, 페미니즘이 대단한 이유는 자기 이기가 실천이 되는 학문이어서라고 하더라고요. 그걸 느껴요.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이런 불편을 겪었다고 말만 해도 이미 시작되었다고. 그걸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정치적으로 된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자유 대화

성임은(진행자, 오프너): Data.f는 둘이서 하는데, 페미니즘을 한다고 스트레스 안 받거나 덜 힘든 게 아닌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뭘로 푸시나요?

한주연(Data.f): 모임을 하거나 자료 만드는 자체가 힘들진 않아요. 그건 나름 즐거운 일이었고, 그냥 돈이 없고. 이 모든 게 비영리로 지원된다는 게 힘들어요. 미트쉐어 지원을 받지만 인건비로 쓸 수 있는 건 없으니까요. 뭘 만드는 경우에만 돈을 써야 하니까.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 시간 없고 힘든 건 내가 선택한 거고 욕하면 되는데, 이걸 이런 활동을 하고 더 퍼뜨리려면 자원이든 시간이든 사람이든 뭔가 더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해 나간다는 느낌이 제일 힘들었죠. 돈 많은 페미니스트가 날 지원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만.

감나무(참석자): 저도 시위에 참여할 때 돈이 제일 문제였어요. 피켓도 뽑고 스티커도 뽑았는데, 알바하던걸 그만둬서 한 두달쯤 되니 점점 사비는 바닥나는데 깃발 뽑고 깃대 하는 것도 힘들고.. 저는 그래서 후원을 받았어요. 페미니스트인진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17만원을 줬어요. 그것도 10만원으로 뽑고 감사합니다, 그랬는데 그래도 부족하더라고요. 그러니 7만원을 더 줬어요. 그게 알려지니까 그냥 제가 돈이 없어요, 이걸 뽑으려면 돈이 필요해요 라고 글을 올렸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1만원, 3만원, 5만원, 이렇게 돈을 주셨죠. 오프너에서도 말했듯이 “어떻게든 되더라”는 것에 공감해요. 그렇게 했더니 2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80만원 정도의 후원금을 받았어요. 그래서 이번에 물품을 미친 듯이 뽑았죠. 지난번엔 스티커와 피켓만 뽑았지만 이번엔 스티커도 뽑고 피켓도 뽑고 뱃지도 뽑고 미친듯이 막 썼는데도 돈이 30만원이 남았어요. 그래서 느낀 게, 다들 페미니즘에 공감도 해 주시고… 대놓고 말해서 페미니즘이 돈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했죠.

한주연(Data.f): 저희는 처음에 참가자 부들에게 최소한의 돈을 받았어요. 대관비가 인당 3천원이어서 그걸 받고, 다과비 2천원 해서 5천원을 받았죠. 그런데 그 사람이 신청해놓고 일이 있어서 빠지면 돌려주고 이런 식으로 했는데, 저는 이런 식으로 돈이 안 남을 줄 몰랐는데 돈이 딱 떨어지게 끝났어요. 회계도 다 했죠. 비영리활동을 이것저것 해봤지만 영리활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이번에 확실히 했어요. 영리활동을 해야 지속할 수 있는 게 있으니까요. 독립적으로 활동하려고 우리끼리 꾸렸지만, 그런 부분... 자금을 어디서 구해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만약 텀블벅을 한다고 하면 어쨌든 프로덕트가 있어야겠죠. 단행본을 낸다면 노동이 있어야 하고. 그게 다 노동이에요. 그게 어렵죠.

감나무(참석자): 이미 가진 자료가 많으셔서 정리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원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성임은(진행자, 오프너): 다들 내년 계획은 있으신가요?

스탭(참석자): 전 여기에 굉장히 오고 싶었어요. 지금 너무나 혼란스러운 시기여서. 소위 1년 전만 해도 한남이었던 사람인데 1년 전쯤에 주위 친구를 통해서 변화하는 시기가 있었어요. 친구가 페미니즘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전형적인 한남충이라 “꼴펨” 이런 식으로 얘기했죠. 그 친구가 저랑 상종을 안 했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하면서 설명을 해줬어요. 제가 정말 운이 좋았죠. 그래서 변화하는 걸 느끼고 체험을 하면서 조금씩 감수성이 생겼어요. 저는 감수성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믿어요. 제가 증인이니까. 근데 제가 혼란스러운 건, 이런 식으로 조금씩 공감하는 부분들이 생기고 불편한 지점들이 생겨서 TV에서 누가 얘기하면 너무 듣기 싫고 짜증나는데, 그걸 내 언어로 표현을 못 하겠어요. 그런 것에 욕심이 생겨서 페미니즘 책도 읽고 공부도 하는데 제 이야기가 안 돼요. 매일 침대에 누워서 자기반성을 해요. 내가 맨스플레인하지 않았나, 성차별을 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는데 그것마저도 내가 남성이라서 하는 것 같은 거에요. 그것도 친구가 고민을 해주는데 그 친구에게 “내가 잘 몰라서” 잘 알려달라고 항상 하는데 내가 그러는 게 얼마나 듣기 싫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그런 자세를 바꿔야겠구나 싶어서 혼자서 공부도 해보고 그런 단체도 나가 보고 그랬는데, 그래서 오늘 여기에 나왔어요. 더 공감하고 가능성을 키우고 싶은데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진짜 조금 더 공감하고 싶은 욕심을 채우고 싶어요. 그래서 내년에는 더 많은 곳에 다니고 후원도 하고 싶어요. 그런 게 많이 늘어나서 내년에는 스스로 당당하게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고 싶어요.

성임은(진행자, 오프너): 성별로 구분하는 지점이 가장 어렵죠. 과연 남성을 페미로 만들어야 하는가? 그 정도의 공과 열과 성을 기울여야 하는가? 그런 노력을 차라리 더 당사자성을 느끼고 직접적으로 피해와 폭력을 느끼는 여성들에게 더 조직적으로 활동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많이 하는데, 모든 사람이 성별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잖아요. 여성/남성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학생, 직장인, 이성애자, 동성애자, 등등. 남성에게 더 많은 권력이 주어진 건 맞아요. 그런 걸 오히려, 내가 어떤 권력을 갖고 있었나 (돌아보고) 나에게 주어진 게 뭐가 있었나 하고 스스로 적어보는 건 어때요? 당사자성은 어떤 측면에서는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즘 안에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포함되는 게 중요하죠.

혜원(페미레인저): 자기가 가진 권력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 자기 위치에 대해 고민이 많이 되면 남성 페미 모임을 스스로 구성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여기는 페미 모임이지만 우린 여기에서 나가면 얼마나 많은 발언권이 삭제되는지 알잖아요. 발언권을 가진 분이 더 많이 이야기를 하셔야 하고, 그런 분이 남성 페미니스트 모임을 구성해서 활동하셔야 하고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논란이 많아요. 남성 페미니스트들이 뭘 해야 하나, 어떤 걸 할 수 있나 이런 논란이 많은데, 여기서 겪는 불편하고 어려운 마음을 여성들은 훨씬 더 크게, 더 많은 곳에서 경험하는 거라는 걸 인지하고 이걸 어떻게 해결할지 스스로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한주연(Data.f): 누가 누구를 가르쳐서 페미니스트가 되는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페미니스트들은 다양한 사람들이니까요.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남성들이 경험해왔던 것들을 가지고 언어를 만들어야지, 여성들이 페미니스트로서 어떤 얘기를 나누는 것을 목표처럼 이야기할 필요는 없죠. 저도 여기 계신 분들과 경험과 정체성이 다 달라요.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고, 거기서 내가 연대하는 걸 하는 거라 생각해요.

혜원(페미레인저): 요즘은 “여자답게 우당탕탕 하자”라는 말을 좋아해요. 처음에 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훨씬 어려웠어요. 마음의 준비도 안 되어 있었고. 그런데 어떤 시기를 지나면서부터 내가 하는 행동들이 우당탕탕 부글부글하긴 해도 원활하게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많이 공감이 됐어요. 그래서 마음의 짐을 많이 덜었죠.

이희주(페미레인저): 우리가 항상 페미니스트라는 전제로 얘기할 때 여자가 페미니스트 되기 더 쉽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딱히 그것도 아니라고 봐요. 당사자성 이야기를 할 때 조심스러운 게, 저희 모임에서도 함께 검은 시위를 나가고 했지만 저는 농담 삼아 하는 게 “나는 연말까지 섹스할 계획이 없기 때문에 당사자성이 없다”고 해요. 여성사를 공부하며 느끼는 게 페미니즘 안에서도 갈래가 많고, 그 안에서도 충돌하는 부류가 많고, 책을 보면서 급진주의에 동의하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다른 부분에 동의하는 게 있고, 충돌을 많이 하죠. 그러니 본인이 스스로 공부하다 보면 남성 페미니즘의 갈래로 갈 수도 있는 거에요.

끝.

첨부파일

작성자 : NPO지원센터, 작성일 : 2016.12.22, 조회수 : 2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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