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일展
2019_0403 ▶︎ 2019_0530 / 주말 휴관
서울시 NPO 지원센터
서울 중구 남대문로9길 39 부림빌딩 1층 품다
Tel. +82.(0)2.734.1109
전시 워크숍 <안녕한 마을살이는 가능한가?>
일시 : 2019년 5월 2일(목) 늦은 6시
장소 : 서울시NPO지원센터 1층 <품다>
문의 : 김은영(010-2233-9997), 장문경(010-5419-7825)
도시는 필연에 가깝게 오래된 것이 새로운 것의 토대가 된다.
이는 오래된 것은 의사소통 수단이 되고, 도시는 사람들의 관계로 이루어짐으로 기존의 맥락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된 것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간을 담고 있고, 새로운 것에 이야기를 부여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도시를 잇고 도시는 외형을 바꿔가며 성장해 간다.
작가의 작업에는 도시를 상징하는 나무가 자주 등장한다.
<그림보다 삶이 크다>, <장수마을을 산다> 등에 등장하는 나무는 땅에서 하늘 끝까지 닿아 있다. 실제의 도시를 감싸고 있는 외로워 보이는 커다란 나무는 작가의 이상이 담긴 상징적 도시이다. 나무가 전경인지, 배경인지 구분되지 않을 만큼 커다란 나무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 중요하다는 호소이고, 「삶」이 중요해졌으면 하는 희망이다. 노자의 「천장지구(天長地久)」라는 말의 뜻처럼 토대로서의 도시에 대한 작가의 지속적이고 상생적인 사랑을 나무라는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다.
<떠돌이 개는 길들이지 않는 마을로 온다>, <새는 저를 잡지 않는 사람의 손 위에 내려 앉는다> 등에 나타나는 나무는 현실세계로 내려 온 나무다. 이 나무는 뿌리도 밑동도 보이지 않고 정형의 공간 안에 들어 있다. 앙상한 가지의 끝에는 듬성듬성 매달린 집의 형상을 한 나뭇잎만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 나무를 냉소적으로 관조하는 개와 새가 등장한다. 이를 통해 주변과의 관계를 드러낸다. 나무는 새에게 보금자리를 내어주고 먹이를 제공한다, 새는 나무의 번식을 돕는다. 서로의 이익을 위한 교환이 아니라 서로가 호혜적 삶을 살아갈 뿐이다. 서로에게 요구하고 간섭하지 않지만 서로를 도우며 따로 또 같이 상생하는 관계이다. 상생의 관계를 스스로 소거한 나무의 현실을 보여준다.
<웅크린 아이>에서의 나무는 온전히 현실이 되었고, 고립된 도시로 나타난다. 이 나무는 마치 밑동이 잘려나가 죽은 그루터기 같다. 잎도, 꽃도, 열매도 없다. 잘려진 오래된 나무 자리에는 반듯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들어섰다. 콘크리트는 작은 새싹이 틀 틈조차 내어주지 않는다. 네모난 콘크리트는 아이가 팔다리를 뻗을 수 없을 정도로 아이를 에워싸 웅크리게 규정한다. 도시가 중심과 주변, 내부와 외부,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사이의 호혜적 삶을 포기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주변의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적응(Adaptation)하며 성장한 도시는 이제 그 생명을 잃고 고정된 상품이 되어간다. 마치 밑동의 껍질이 벗겨져 고사된 어느 집 마당 한편의 오래된 나무처럼 말이다. 작가는 이제 잎과 꽃과 열매를 보기위해 고사된 나무의 뿌리를 외롭게 주시하고 있다. 뿌리에서 새롭게 올라오는 맹아를 기다린다.
정기황 (사단법인 문화도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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